| 한글 | 성암 석구 |
|---|---|
| 한자 | 性庵錫九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망월사, 결사, 선농일치, 내원사 |
| 시대 | 근대 |
| 출생 | 1889년 |
| 입적 | 1950년 |
| 호 | 성암(性庵) |
| 탑 소재지 | 양산 통도사 |
백장청규 수행하며 후학 인도한 수좌
1889년 2월 3일(음력) 강원도 삼척군 소달면 신리(삼척시 도계읍 신리)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윤위오(尹衛五), 모친은 남양 홍씨. 속명은 석구(錫九)이다. 11세에 사서삼경에 능통하고, 17세에 마을 저수지를 축조하는 데 앞장서 주민들의 칭송을 받았지만, 홍수로 가옥과 전답이 유실되는 참상을 겪고 무상함을 느껴 고향을 떠났다.
정처 없이 떠돌다 금강산 비로봉에서 식음을 끊고 20일째 되던 날 부처님께 합장하는 현몽을 하고, 목숨을 버리려는 마음을 바꿨다. 그 길로 금강산 장안사에서 주지 현의룡(玄懿龍)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이때가 21세였다. 몰골이 형편없어 대중이 쫓아내려고 하자, 목 놓아 울어 의룡 스님의 허락을 받았다. 3일씩 부목과 공양주 소임을 본 후에 『능엄경』을 읽었는데 금세 외웠다.
금강산 장안사 명심강원 동오 강백(東旿講伯) 문하에서 교학을 연찬하고 참선을 병행했다. 당대 선지식 수월(水月) 스님을 친견하고 공부를 하기 위해 북방으로 떠났다. 수월 스님의 경책에 “삼천대체 세계에 내가 설 땅이 없구나.”라며 3년간 묵언 정진했다. 수월 스님에게 가르침을 받고 남방으로 내려와 혜월(慧月) 스님 문하에서 탁마(琢磨)했다. 수월, 혜월 스님 모두 경허(鏡虛) 스님 제자이다.
40세 되던 해에 도봉산 망월사에서 수좌 30명과 결사를 했다. 45세에 오대산 월정사 주지로 부임해 대중을 외호했다. 49세 때는 유생들의 횡포로 폐사 직전에 놓인 영주 부석사 주지를 맡아 학식과 덕망으로 그들을 감복시켰다.
58세에 천성산 내원사 선원에 주석하며 전답을 경작하고 산림을 조성하는 등 백장청규를 실천하며 선농일치(禪農一致) 수행을 했다. 당시 내원사 대중들은 지게, 낫, 호미 한 개씩 지정돼 있었다. 정해진 일을 못 마치면 공양을 굶어야 했다.
노년에 통도사 감로당에 머물렀으며, 1950년 1월 27일(음력) 세수 61세, 법랍 40세로 원적에 들었다. 부도와 비는 양산 통도사에 모셨다. 상좌로 성수 스님이 있다.
· 집필자 : 이성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