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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우 보화

한글석우 보화
한자石友普化
유형인물
키워드조계종, 종정, 금당선원
시대근대
출생1875년
입적1958년
석우(石友)
주요주석처석왕사, 수덕사, 선암사
한국전쟁 후 종정으로 추대돼 후학 인도
1875년 5월 11일 경남 의령에서 출생했다. 부친은 설상필(薛庠必), 모친은 정경씨(鄭景氏). 설총(薛聰)의 45세손으로, 속명은 태영(泰榮)이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약초 캐는 일을 생업으로 하면서 의서(醫書)를 비롯해 한학을 연찬했다. 명의로 소문나 환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서른 살(1905)에 부모의 간곡한 청으로 혼례를 올렸지만 범어사에서 『보조어록』을 보고 출가에 뜻을 두었다. 1912년(38세) 금강산 장안사에서 연담 응신(蓮潭凝信)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법명은 보화(普化). 동선 의정(東宣義淨) 스님에게 구족계를 수지하며 석우(石友)라는 법호를 받았다. 이후 금강산 마하연에서 상월 봉환(霜月奉煥), 석하 지명(石下芝明) 스님과 20년간 참선 수행을 했다. 1935년 3월 선학원에서 열린 조선불교수좌대회에 참석하고, 1937년 상월 스님과 충청, 전라, 경상도 등 삼남(三南) 지방을 순력하고 지리산 칠불암 선원에서 수행했다. 은사에 대한 효심이 지극해 연로하여 거동이 불편한 스승를 업고 장안사, 영원암, 표훈사, 정양사, 만폭동 등 금강산을 구경시켜 드렸다. 만공(滿空), 만해(卍海) 스님이 ‘금강산 양반 스님’이라고 칭송했다. 1945년 봄 남해 다솔사(多率寺)에서 주석하다 해방을 맞았으며, 1954년 가을 해인사 조실로 추대돼 납자(衲子)들을 지도했다. 1955년 1월 고성 옥천사 백련암으로 옮겨 수행했으며, 같은 해 8월 서울 조계사에서 열린 전국승려대회에서 종정(宗正)에 추대됐다. 평소 “여자를 가까이하지 말라.”라면서 “물까마귀들을 조심해야 한다. 독사한테 물려도 사는 수가 있지만, 물까마귀한테 물리면 일생 망치고 중 신세도 끝이다.”라고 당부했다. 잠이 많은 제자에게는 방석 위에 “시간은 결코 다시 오지 않는다.”라는 의미의 ‘時如時好不再來(시여시호부재래)’라는 글씨를 써놓고 정진하게 했다. 팔공산 동화사 금당선원에서 수좌들을 지도하다, 1958년 12월 27일(음력) 세수 84세. 법랍 45세로 원적에 들었다. 제자들이 유게(遺偈)를 청하자, “망상을 말라.”라고 사양했으나, 거듭 간청하자 마지막 게송을 전했는데, 다음과 같다. 囊括乾坤方外擲(낭괄건곤방외척) 주머니에 천지 잡아넣어서 시방 밖에 던져 버리고 杖挑日月袖中藏(장도일월수중장) 소매 가운데 해와 달을 따 넣어 감춰버림이라 一聲鍾落浮雲散(일성종락부운산) 종 소리 떨어지매 뜬구름이 흩어지니 萬朶靑山正夕陽(만타청산정석양) 일만 푸른 산봉우리 이미 다 석양이로다. 제자로 우봉(愚鳳), 가희(可喜), 총각(總角), 보공(普空), 혜원(慧源), 혜종(慧宗) 스님 등이 있다.
· 집필자 : 이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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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지관 편 | 서울: 가산불교문화연구원 | 2000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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