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석상 신수 |
|---|---|
| 한자 | 石霜信首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교정, 법주사 |
| 시대 | 근대 |
| 출생 | 1872년 |
| 입적 | 1947년 |
| 호 | 석상(石霜) |
| 주요 주석처 | 금강산 장안사, 사천 다솔사 |
| 비 소재지 | 대구 동화사 |
법주사 미륵대불 조성 발원한 탈속한 천진보살
1872년 2월 10일 충남 부여군 남면 송학리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장홍근(張洪根), 모친은 은진 송씨(宋氏), 본관은 인동이다. 12살 되던 해부터 7년간 부여에서 김기상(金箕祥) 선생에게 『통감(痛鑑)』과 사서삼경 등 한학을 공부했다.
1893년 4월 금강산 신계사에서 진하(震河)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진하스님에게 사미계(1893년 6월), 비구계및 보살계(1895년 7월)를 수지했다. 1894년 3월부터 1895년 10월까지 공주 동학사 강원 만우(萬愚) 스님 회상에서 초등과를 공부했다.
순창 구암사 석전 스님 문하에서 『능엄경』과 『기신론』(1895년 10월~1896년 10월), 순천 송광사 금명(錦溟) 스님에게 『반야경』과 『원각경』(1897년 3월~1898년 10월), 산청 대원사에서 석전 스님에게 고등과(1899년 3월~1901년 10월까지)를 배워 강원 이력(履歷)을 마쳤다.
교학을 연찬하고 금강산으로 돌아와 1903년 10월 건봉사에서 개강(開講)하여 학인들을 지도했다. 이때부터 1926년까지 20여 년간 건봉사와 속리산 법주사 강사(講師)를 지냈다. 1913년 대선법계(大禪法階), 1916년 중덕법계(中德法階), 1918년 대덕법계(大德法階), 1921년 대선사법계(大禪師法階)를 수지했다.
법주사 법무(1912~1916), 청주 용화사 포교사(1925)를 지내고 1928년 법주사 주지로 선출돼 1940년까지 봉직했다. 주지 재임 시절 복천선원을 창건하고 주민을 위한 대동강습소(大同講習所)를 열었으며, 1939년에는 근대 최초의 조각가 김복진을 초빙해 미륵대불 조성에 힘썼다.
1941년 3월 서울 선학원에서 열린 유교법회(遺敎法會)에 증명법사로 참석했는데, 석전 스님과 만공 스님 등 당대 고승들이 조선불교 정통성 수호를 발원하며 모인 법석이었다. 『석전시초(石顚詩鈔)』에 석전 스님이 지은 「贈石霜上人(증석상상인)」, 「追和石霜上人還曆韻(추화석상상인환력운)」 두 편이 실려 있다.
조선불교중앙교무회 고문(1945년 9월), 조선불교 총본원 교정(1947년 5월)으로 추대됐다. 1947년 12월 23일 법주사에서 세수 75세, 법랍 54년으로 원적에 들었다. 진영과 비가 법주사에 있다.
· 집필자 : 이성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