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서응 동호 |
|---|---|
| 한자 | 瑞應東濠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옥천사, 유교법회 |
| 시대 | 근대 |
| 출생 | 1876년 |
| 입적 | 1950년 |
| 호 | 서응(瑞應) |
| 주요주석처 | 금강산 신계사, 합천 해인사 |
| 비소재지 | 통영 미래사, 순천 송광사 |
근대 한국불교 초석을 놓은 강백
1876년 2월 13일(음력) 경남 고성군 개천면 원동리에서 태어났다. 속성은 채씨(蔡氏)이며, 양친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출가 시기도 정확하지 않지만 1892년 12월 옥천사에서 용명(龍溟) 스님에게 통사를 배우고, 1894년 영해(影海) 스님에게 『고문진보』를 배웠다고 전하는 기록으로 보아 10대 중반에 출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영해 스님에게 사집과(四集科)를 수료한 것은 1895년 12월로 세수는 19세였다. 이후 10년간 고성 옥천사, 함양 벽송사, 산청 대원사, 함양 영원사, 남원 천은사 강원에서 『화엄경』, 『기신론』, 『원각경』 등 경학을 공부했다. 이때 제봉, 석전, 금파, 진응 스님 등 대강백의 지도를 받아 강사의 반열에 올랐으며, 함양 영원사(1902), 순창 구암사(1904), 고성 옥천사(1905), 양산 통도사(1909, 1920), 합천 해인사(1915), 김천 청암사(1916), 동래 범어사(1925), 철원 심원사(1939) 강원에서 강주로 후학을 양성했다.
1923년 1월 진주불교진흥회 창립 당시 평의원을 지내고 강연을 하는 등 포교에도 힘썼다. 1925년 1월 진주 불교진흥회 주최로 열린 성도재일 기념식에서 이종천(李鍾天) 등과 강연을 했다. 염불수행에도 관심을 가져, 고성 옥천사 청련암에서 만일계(萬日契)를 만들어 화주를 맡았다. 「만일계원 모집문」에서 “우리 인생이 이 고세상(苦世上)에 살다 필경 이 몸이 죽은 후에 괴로운 세상에 다시 나지 말고, 저 즐겁고 좋은 극락세계에 왕생할 뜻으로”라고 동참을 권했다. 1934년 8월 삼남지방에 수재가 발생했을 당시, 옥천사 대중과 함께 의연금(義捐金)을 기부했다.
한시로 지은 무상가(無常歌)가 전하는데, 내용 일부는 다음과 같다.
여보시오. 동포들아. 이내 말씀 들어보소. 인생이 초로(草露) 같고 … 어서 바삐 무상(無常)을 깨치시고. …(중략)… 풀끝에 이슬 보오, 해 솟으면 없어지고, 춘삼월 저 꽃 보소, 불우 삼일 못다 가서 낙화(洛花)되어 떨어지오. …(중략)… 이 말하는 이 사람도 어제같이 청년인데, 오늘 벌써 백발이네.
1939년 서울 개운사 대환계단(大環戒壇)에서 갈마아사리를 맡았는데, 당시 전계아사리는 석전 스님, 교수아사리는 일우 스님, 존증아사리는 한암·만암 스님이다. 1941년 3월 선학원에서 봉행한 유교법회(遺敎法會)에 증명법사로 참석했다.
1950년 8월 21일(음) 고성 옥천사에서 세수 74세로 원적에 들었다. 상좌로 조계종 초대 감찰원장을 지낸 문성(汶星) 스님과 경남고 교장을 지낸 이해도(李海道)가 있다.
· 집필자 : 이성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