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봉하 장조 |
|---|---|
| 한자 | 峰霞長照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백양사, 석전, 광성의숙 |
| 시대 | 근대 |
| 출생 | 1887년 |
| 입적 | 1978년 |
| 호 | 봉하(峰霞) |
| 주요주석처 | 고성 옥천사 |
내외전 신구학문을 두루 겸비한 수행자
1887년 4월 6일 전북 고창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박노일(朴魯一), 모친은 김씨(金氏). 속명은 박장조(朴長照), 본관은 순천이다. 출가 전 이낙현 선생에게 통사(通史)를, 박치권 선생에게 사서삼경을 공부했다.
1902년 장성 백양사 운문암에서 호명(浩溟)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사미계는 호운(皓雲) 스님(1902년 7월 15일), 비구계와 보살계는 해인사 호은(虎隱) 스님(1908년 4월 15일)에게 수지했다.
장성 백양사, 합천 해인사, 동래 범어사, 순창 구암사에서 내전을 익혔는데, 과목, 스승, 도량은 다음과 같다. 기신론(금파 스님, 함양 영원사), 능엄경(초월 스님. 동래 범어사), 반야경·원각경(만암 스님, 합천 해인사), 현담(玄談, 고경 스님, 양산 통도사), 화엄(환응 스님, 장성 백양사), 선문염송·경덕전등록(석전 스님, 순창 구암사).
스승이 있다면 함양, 동래, 합천, 양산 등 원근을 가리지 않고 달려가 공부했다. 광성의숙 세부측량과(1910)와 보통과(1913), 동국대 전신인 중앙학림(1916~1919)을 졸업하는 등 근대학문도 배웠다.
1918년 대선법계(大禪法階), 1923년 중덕법계(中德法階), 1929년 대덕법계(大德法階), 1932년 종사법계(宗師法階), 1939년 대종사법계(大宗師法階)를 품수했다.
1921년 2월부터 1930년 초까지 백양사 강사로 후학을 지도하고, 고창 상원사 주지, 장성 백양사 법무(法務)와 감무(監務) 등을 지냈다. 1945년 12월 백양사 주지에 이어 고창 선운사 주지, 정광학원 대표이사, 불교전남종무원장, 영광 불갑사 주지를 역임했다. 1954년까지 제방선원에서 52안거를 성만했다.
1974년 3월 나주 심향사로 주석처를 옮겼으며, 1978년 8월 28일(음력) 세수 92세. 법랍 77세로 원적에 들었다. 평소 “사리, 그거 뭐하는 것이다냐.”라는 유훈에 따라 사리는 수습하지 않았다. 비와 부도는 백양사 부도전에 모셔져 있다. 비문의 찬(讚)에서 운허(耘虛) 스님은 “드높은 학덕과 수행을 미소 속에 감추었다.”라고 기렸다.
1970년대 초반 “큰스님이나 번역할 수 있기에 특별히 부탁하는 것.”이란 묵담(默潭) 스님의 요청으로 『치문』과 『선요』를 한글로 번역했을 뿐 저술을 남기지 않았다. 책으로 발간되지는 못했다.
· 집필자 : 이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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