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몽초 인홍 |
|---|---|
| 한자 | 夢草仁弘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대강백, 통도사, 구하, 경봉 |
| 시대 | 근대 |
| 출생 | 1870년 |
| 입적 | 1947년 |
| 호 | 몽초(夢草) |
일제강점기 통도사 대강백
1870년 가을(9월 또는 10월) 경남 양산시 하북면에서 태어났다. 속성은 허 씨(許氏)로, 속명은 전하지 않는다. 어려서 양친과 사별한 후 형님 댁에 의탁해 있으면서, 『천자문』과 사서삼경(四書三經) 등 한학을 공부했다.
18세 무렵 고향 인근의 양산 통도사로 입산했다. 속성을 붙여 ‘허몽초’로 불리는데, 은사 스님이 누군지 정확하지 않지만 주로 주석한 양산 통도사 자장암과 인연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인홍(仁弘)이란 법명은 은사에게 받은 것이며, 몽초(夢草)는 자호(自號)이다.
1890년 예천 용문사 강원에서 용호 해주(龍湖海株) 스님 회상에서 구하(九河) 스님과 함께 교학을 공부했다. 내외전을 겸비하고 통도사 강원에서 후학을 지도했는데, 1930년대로 추정된다. 상좌인 화산(華山, 대구 보광선원 조실) 스님이 1935년 통도사 자장암으로 출가했을 당시 몽초 스님은 대강백으로 학인을 가르치고 있었다. 화산 스님 증언에 의하면 경봉(鏡峰) 스님처럼 키가 크고 체격이 장대했으며, 성품이 엄격해 후학을 지도하는 데 호랑이 같았다. 주로 통도사에 머물며 교학과 선지(禪旨)에 높은 경지를 보였다. 구하, 해담(海曇), 경봉 스님 등과 교류했으며, 노년에는 몸이 불편해 병석에 있었다.
1947년 1월 7일(음력) 통도사 자장암에서 “아무것도 남기지 말라.”라는 마지막 가르침을 전하고 세수 77세, 법랍 60세로 입적했다. 당시 몽초 스님은 “부도와 비를 절대로 세우지 말고, 장례는 지극히 검소하게 치르며, 다비 후에는 남은 재마저 자연으로 돌아가게 하라.”라면서 “나를 위해 장례를 치르고 부도와 비를 세울 비용이 있으면, 그것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데 사용하라.”라고 유훈을 남겼다. 제자들은 유지를 받들어 진영, 부도, 비를 모시지 않았다. 한시 등 스님의 글을 담은 ‘문집’이 있었다고 하는데 전하지 않는다. 제자로 춘삼, 영일, 봉곡 성학, 봉달, 안영호, 화산 스님과 이종원(李鐘元)이 있다.
몽초 스님 입적 후 쓴 구하 스님의 만시(挽詩)가 『축산문집(鷲山文集)』에 전한다.
· 집필자 : 이성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