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도봉 본연

한글도봉 본연
한자道峯本然
유형인물
키워드선학원, 만해, 선우공제회
시대근대
출생1873년
입적1949년
도봉(道峯)
조선불교선리참구원 설립하며 친일불교에 맞선 스님
1873년에 출생했는데, 속성이 강씨(康氏)라는 것 외에는, 고향과 가족관계 등 출가 전에 대해 알려진 것이 없다. 1896년(23세) 함경남도 안변군 설봉산 석왕사에서 출가했다. 1908년 7월 15일 합천 해인사에서 비구계를 수지하고, 1913년 2월 금정산 범어사에서 대교과를 졸업했다. 1900년대 중반부터 1910년대 초반까지 해인사와 범어사 등에서 참선수행하고 교학을 공부했다. 1915년 석왕사로 돌아와 선실(禪室) 좌주(座主)로 화두를 참구하며 수좌들을 지도했다. 1918년 석왕사 경성포교당 포교사로 부임했다. 1921년 남전, 석두 스님과 조선불교선리참구원(朝鮮佛敎禪理參究院)을 설립하고, 1922년 3월 만공, 학명, 성월, 만해 스님 등과 선우공제회 취지서에 서명하는 등 선우공제회 창설에 힘을 보태고, 선우공제회 수도부 이사(1923)와 서무부 이사(1924)를 지내며 친일불교에 맞서 조선불교 전통 수호에 노력했다. 1922년 조선불교유신회가 주도한 사찰령 철폐 건백서에 서명[조선총독부에 대한 질문위원]했으며, 1923년 8월 25일자 동아일보에는 조선불교총무원 강연회에서 ‘해도현(解倒懸)’이란 제목으로 강연을 했다는 기사가 실려 있다. 독립운동가인 만해 스님과 매우 각별한 사이였다. 1927년경 경성복심법원 검사국에서 작성한 요시찰 명부에 만해 스님의 가장 가까운 인물로 기록되어 있다. 1931년 ‘충무공유적보존회’에서 추진한 성금 모금 운동에 만해, 적음 스님을 비롯해 선학원, 개운사, 용문사 스님들과 참여했다. 1939년 9월 설봉산 석왕사에서 대종사(大宗師) 법계를 품수받고, 1945년 해방 후에는 선학원 상벌위원(賞罰委員)을 지냈다. 1949년 8월 26일(양력) 오전 7시 서울 안국동 선학원에서 세수 77세, 법랍 54세로 입적했다. 임종게는 다음과 같다. 吾年七十七(오년칠십칠) 내 나이 일흔일곱 今日示無常(금일시무상) 오늘에야 무상을 알았노라 呵呵大笑去(가가대소거) 한바탕 웃고 가노니 地獄與天堂(지옥여천당) 지옥과 천당을 가릴쏘냐! 『조선불교월보』, 『유심(唯心)』, 『불교신보(佛敎新報)』 등에 스님의 기고와 관련 기사가 실려 있다. 경봉(鏡峰) 스님과 나눈 서찰이 『삼소굴소식』에 전한다.
· 집필자 : 이성수

관련자료

    • 내용
  • 위로
  • 불국토
    문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