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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원 고경

한글덕원 고경
한자德元古鏡
유형인물
키워드해인사, 명고축출
시대근대
출생1882년
입적1943년
덕원(德元)
해인사 주석하며 독립사상과 민족의식 고취한 스님
1882년 11월 20일 충남 부여군 상서면 가천리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이광회(李光會), 모친은 전주 이씨이다. 속명은 이고경(李古鏡). 출가 전 행적은 알려져 있지 않다. 1904년 3월 13일 가야산 해인사에서 일하법린(日荷法璘)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법사는 경산 경식(擎山擎植, 1870~1907) 스님. 강백(講伯)인 보담 보하(寶潭寶河) 스님에게 사미계를 받고 득도했다. 법명은 고경(古鏡), 법호는 덕원(德元)이다. 1909년 해인사에서 남전(南泉) 스님에게 비구계를 수지하고, 1910년 2월 10일 대선법계(大禪法階)를 품수했다. 1914년 5월 2일 대덕(大德), 1916년 3월 10일 대교사(大敎師)로 승급했다. 1911년 7월 15일 양산 통도사에서 하안거를 성만하고 강원을 마쳤다. 해인사립(海印寺立) 해명학교(海明學校) 불교과 강사(1910), 통도사 금강계단 갈마아사리(1912), 해명학교 교감(1913), 남해 화방사 주지(1914), 안변 석왕사 포교당 포교사(1916), 경성불교중앙학림 강사 및 학감(1918), 공주 마곡사 불교전문 강사(1919), 해인사 불교전수강당 강사(1924), 해인사 금강계단 교수아사리(1924), 해인사 경리위원(經理委員, 1925), 해인사 법무(法務, 1926), 해인사 감무(監務, 1928)를 지냈다. 1922년에는 친일승려 강대련(姜大連)을 경성 한복판에서 명고축출(鳴鼓逐出)한 조선불교유신회(朝鮮佛敎維新會)에 참여했다. 1924년 해인사에 주석할 당시 합천경찰서 정보부장(일본인)이 군홧발로 해인사 대적광전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고 젊은 학인들에게 곧바로 끌어내 일주문 옆 연못에 빠트리게 했다. 항일운동비밀결사체인 만당(卍黨)에 참여하고, 1929년 조선불교승려대회에서 교정(敎正) 전형위원으로 선출됐다. 1929년 경성 법륜사에서 봉행된 대승원교화엄경산림(大乘圓敎華嚴經山林)에 참석해 법문을 했다. 1933년 9월 8일 해인사 주지로 취임했다. 1942년 11월 치안보안법 위반을 이유로 강제연행됐다. 소위 ‘불령선인(不逞鮮人)’이란 빌미로 체포됐다. 합천경찰서에서 가혹한 고문을 받고 1943년 1월 21일(음력 12월 5일) 순국(殉國)했다. 저서로 『해인사약지(海印寺略誌)』(1933)와 『불교와 예수교』(1938)가 있다. 일제강점기 발행된 『조선불교월보』와 『불교』에 기고문이 다수 실려 있다. 2011년 8월 독립유공자로 포상받았다.
· 집필자 : 이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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