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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호

한글김상호
한자金尙昊
유형인물
시대근대
출생1899년
입적1965년
탑소재지경남 함양군 송전리 문수동
독립운동과 조선불교 발전에 기여한 인물
1889년에 태어났다. 아버지는 김영길(金永吉), 어머니는 여산 송씨이다. 어려서 한학을 수학하다 1905년 범어사에서 성해(性海)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명정학교(明正學校)를 거쳐 1918년 범어사 강원 대교과를 이수했다. 1919년 3월 7일 차상명(車相明), 김봉환(金奉煥), 유석규(劉碩規) 스님 등 50여 명과 동래시장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했다. 1919년 6월 대동단(大同團)에 가입했으며, 같은 해 10월 이담해(李湛海), 오성월(吳惺月), 김경산(金擎山) 등 범어사 스님들과 비밀리에 상해임시정부에 독립운동자금을 보냈다. 1920년 9월 조선불교청년회범어지회 창립총회에서 권사(勸辭)를 했다. 1920년 8월 왜성대(倭城臺) 폭파를 모의하고, 1921년 3월 불교유신회에 참여했다. 1927년 불교중앙회 창립준비위원회에 동참하고, 1928년 3월 조선불교청년회에서 이재부(理財部) 재무로 선출됐다. 1929년 1월 조선불교선교양종승려대회에 참석하고, 3월 26일 다른 젊은 스님들과 친일승려인 용주사 주지 강대련을 종로 일대에서 명고축출(鳴鼓逐出)하는 사건을 일으켰다. 이 일로 체포돼 징역 6개월을 선고받았다. 출옥 후인 1930년 7월 비밀결사체인 만당(卍黨)을 조직해 불교혁신운동을 펼쳤다. 1931년 조선불교청년회동맹 창립대회에서 중앙집행위원장, 1936년 불탄축하(佛誕祝賀) 준비위원회 부회장, 1938년 3월 조선불교중앙교무원 이사로 선출됐다. 1942년 10월에는 조선어학회사건으로 고초를 겪었다. 1960년 광복동지회(光復同志會)를 창설했다. 저서로 『광복운동사적』이 있고, 1965년 입적했다는 것 이외에는 자세히 전하는 바가 없다.
· 집필자 : 이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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