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기산 석진 |
|---|---|
| 한자 | 綺山錫珍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송광사, 중앙학림, 조선불교조계종 |
| 시대 | 근대 |
| 출생 | 1892년 |
| 입적 | 1962년 |
| 호 | 기산(綺山) |
근대불교 활로 모색하며 교화한 수행승
1892년 5월 전남 순천에서 출생했다. 부친은 임원오(林元悟), 본관은 나주, 모친은 김씨(金氏). 11세에 송광면 장안리 용호재(龍虎齋)에서 사서(四書) 등 외전을 공부했다.
1905년 부친이 세상을 떠난 후 조계산 송광사 천자암에서 취월 기순(翠月琪珣)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사미계는 호붕 진홍(浩鵬振弘) 스님에게, 비구계는 금명 보정(錦溟寶鼎) 스님에게 받았다. 사미과에 이어 1907년 사집과와 초등과를 수학했다. 1910년부터 1912년까지 송광사 보통과를 이수하고, 1913년 중등과정 수료 후 공비생(公費生)으로 1915년 서울로 유학해 중앙학림 중학 과정, 1919년 불교중앙학림(동국대 전신)을 졸업했다.
1920년 송광사 지방학림 학감 및 교원으로 재직하면서 송광사 법계고시에서 대덕(大德) 법계를 받았다. 법호는 기산(綺山)이다. 총무원 부원(部員, 1922), 불교청년회 상무간사(1922), 송광사 주지 대리(1923), 송광사 전문강원 강사(1929), 송광사 주지(1932, 1940), 전남교구 종무원장(1949), 중앙총무원 이사(1950), 광주 정광고등학교장(1951) 등을 지냈다.
1927년에는 송광사 보조국사(普照國師) 감로탑을 보수하고 사고(史庫)를 정리하는 등 도량을 정비했다. 송광사 감무로 재임 시 조선불교계의 일본 시찰단 일원으로 일본을 다녀왔다. 1937년 31대본산연합회의 부의장과 총본산건설 상임위원, 1941년 조선불교조계종 교무부장을 맡았다. 불교정화 이후 동국대 강의와 집필에 집중하다 1968년 5월 13일 서울 성북구 청룡암에서 세수 77세, 법랍 64년으로 입적했다. 저서로 『송광사지』, 『전남도지』, 『금강반야바라밀경강의』, 『불교법어성전』 등이 있다.
· 집필자 : 이성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