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금봉 병연 |
|---|---|
| 한자 | 錦峰秉演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임제종운동, 선암사, 만해 |
| 시대 | 근대 |
| 출생 | 1869년 |
| 입적 | 1916년 |
| 호 | 금봉(錦峰), 향엄(香嚴) |
경학 연찬하며 조선불교 수호에 앞장선 강사
1869년 12월 24일 전라도 근천부(近天府, 지금의 여수시) 화양면 옥적리(玉笛里)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장건하(張建廈), 모친은 영성(靈城) 정씨(丁氏). 속명은 장기림(張基林), 법명은 병연(秉演), 법호는 금봉(錦峰), 아호는 향엄(香嚴)이다.
13세에 사기(史記)와 경서(經書)를 통달했다. 14세에 형이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인생무상을 느껴 불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여수 영취산 흥국사 경담(鏡潭) 스님과 인연을 맺었다. 1884년 4월 8일 출가했다.
10여 년간 불교 경전을 공부하고, 구례 화엄사 원화(圓化). 순천 선암사 경운(擎雲), 해남 대흥사 범해(梵海), 해남 대흥사 원응(圓應) 스님에게 『사집』 『사교』 『염송』 등을 배웠다. 경운(擎雲) 스님 법맥을 이었다. ‘여한 9대가(麗韓九大家)’인 영재(寗齋) 이건창(李建昌), 매천(梅泉) 황현(黃玹), 하정(荷亭) 여규형(呂圭亨)과 토론할 정도로 학식이 깊었다. 비문에 ‘한유구소(韓柳歐蘇)’라는 구절이 등장할 만큼 문장이 탁월했다. ‘한유구소’는 중국의 명문장가 한유(韓愈), 유종원(柳宗元), 구양수(歐陽脩), 소동파(蘇東坡)를 이르는 말이다.
1895년 3월부터 10여 년간 순천 선암사 대승암 강원에서 경학을 가르쳤다. 1910년 원종(圓宗) 설립 후 친일승려 이회광이 일본 조동종과 연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박한영, 진진응, 한용운 스님 등과 임제종(臨濟宗) 설립 운동을 전개하며 조선불교 수호에 나섰다. 1912년 선암사 주지에 취임하고, 순천포교당을 개설했다. 1914년 선암사가 대본산으로 승격된 뒤에도 주지를 맡았다. 일제의 토지수용령 공포로 선암사 산림이 강제 편입되는 상황에 처했을 때 탁지부(度支部: 국가 재무 총괄한 부서)에 수차례 진정서를 제출해 삼보정재를 지켰다.
1916년 하안거 해제 후 선암사에서 세수 48세, 법랍 35세로 원적에 들었다. 제자로 철운 종현(鐵雲宗玄), 용곡 정호(龍谷正浩) 스님을 두었다.
1917년 11월 5일 열린 추도회에서 만해 스님은 한시 「與映湖錦峰兩伯作(여영호금봉양백작) 在宗務院(재종무원)」을 지었다. 제목은 ‘영호 금봉 두 선사와 시를 짓다, 종무원에서’라는 의미이며, 내용은 다음과 같다.
昔年事事不勝疎(석년사사불승소) 지난날 일마다 소홀했노라
萬劫寥寥一夢如(만겁요요일몽여) 만겁인들 한바탕 꿈이 아니랴,
不見江南春色早(불견강남춘색조) 강남의 이른 봄빛 보려 않은 채
城東風雪臥看書(성동풍설와간서) 성동의 눈바람 속 누워 책을 읽는다.
· 집필자 : 이성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