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정명 천인 |
|---|---|
| 한자 | 靜明天因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만덕산백련사제이대정명국사후집, 백련사, 원묘 요세 |
| 시대 | 고려 중기 |
| 출생 | 1205년(희종 1) |
| 입적 | 1248년(고종 35) |
| 시호 | 정명국사(靜明國師) |
| 비 소재지 | 순천 선암사 |
고려시대 백련사 8국사 중 제2대 국사
고려시대 만덕산 백련사 8국사(國師) 중 제2대 국사로 추앙받는 천태종의 고승이다. 사상과 수행 면에서 천태종 개조인 원묘 요세(圓妙了世)의 사상을 가장 잘 이해하고 발전시킨 인물이다.
속성은 박(朴)씨로, 1205년(희종 1) 연산군(燕山郡)에서 태어났다. 17세인 1221년(고종 8)에 진사과(進士科)에 뽑혀 국자감(國子監)에 들어갔으나, 예부시(禮部試)에는 급제하지 못하였다. 24세경인 1228년(고종 15) 같이 배우던 허적(許迪), 신극정(申克貞)과 함께 원묘 요세에게 출가하였다.[신극정이 후에 백련사 제4대 국사인 천책(天頙)이다.]
원묘 요세의 제자가 된 대사는 『법화경』에 통달하였고, 이후 수선사(修禪社)의 혜심(慧諶, 1178~1234)에게 나아가 조계(曹溪)의 요령(要領)을 배우고 1232년(고종 19) 다시 백련사로 돌아와 『묘법연화경』을 염송하는 보현도량(普賢道場)에 참여하였다. 이는 백련결사를 공식화한 도량이었다. 이후 2년간 백련사에 머무르다 지리산, 비슬산 등지에서 수행하였다. 요세가 백련사 사주(寺主)를 물려주려 하자 공덕산으로 물러나 최자(崔滋, 1188~1260)가 중수한 미면사(米麵寺)에 머물렀다. 최자는 상주 목사(尙州牧使)로 있으면서 3년에 걸쳐 절을 중수하고 공덕산 백련사(동백련사)라 이름하였다.
천인은 41세인 1245년(고종 32) 요세의 요청으로 백련사의 제2세 법주가 되어 결사를 이끌었다. 스승인 요세는 그해 4월에 대사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별원(別院)으로 물러나 7월 7일 입적하였다.
1247년(고종 34) 몽고군의 침입을 피해 완도 상왕산(象王山) 법화사(法華社)로 피란하였고, 1248년 백련사로 나왔지만 병환으로 문인 원환(圓皖)에게 사주 자리를 넘겨주고 용혈암(龍穴庵)으로 물러나 입적하였다. 시호는 정명국사(靜明國師)이다.
저서로 『정명국사시집(靜明國師詩集)』 3권, 『정명국사후집(靜明國師後集)』 1권 등이 있었으나, 전자는 전하지 않고 후집은 일부만 전한다. 고려시대 문인들의 명문장을 모아놓은 『동문선(東文選)』에는 대사의 작품으로 시 18편, 기 1편, 제문 3편, 소 2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대사는 원묘 요세를 계승해 천태종을 발전시킨 계승자이며, 시와 문장이 『동문선』에 수록될 정도로 문학적으로 높이 평가된 고려 승려로 평가할 수 있다.
· 집필자 : 신행문화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