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인악 의첨 |
|---|---|
| 한자 | 仁嶽義沾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인악집 |
| 시대 | 조선 후기 |
| 출생 | 1746년(영조 22) |
| 입적 | 1796년(정조 20) |
| 호 | 인악(仁嶽), 자-자의(子宜) |
| 주요 주석처 | 속리산 대암사(大庵寺), 무주 백련사 |
| 탑 소재지 | 탑-무주 백련사 |
18세기 동화사에 주석하며 여러 저술을 통해 교학 연구를 진흥시킨 고승
18세기 팔공산 동화사에 주석하며 경전에 대한 교학적 해석을 담은 사기(私記)를 저술하여 교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인물로서, 당시 호남에 주석했던 연담 유일(蓮潭有一, 1720~1799)과 쌍벽을 이룬 대학자이다.
법명은 의첨(義沾), 법호는 인악(仁嶽)이다. 속성은 성산 이씨이며, 부친은 이휘징(李徽澄), 모친은 달성 서(徐)씨다. 고려 개국벽상공신(開國壁上功臣) 대광사공(大匡司空) 성산부원군(星山府院君) 이능일(李能一)의 23세손이다.
1746년(영조 22) 9월 9일 비슬산 기슭인 달성 인흥촌(仁興村)에서 태어났다. 8세 때 향학에 들어가 『소학(小學)』을 비롯하여 유가 경전을 익히고, 열다섯에 『시경』·『서경』·『주역』을 읽었다. 한 번 듣고 읽은 것은 세 번 암송하기 전에 모두 외워 인근 마을까지 이름이 났다고 한다.
18세에 인근의 용연사(龍淵寺)에 가서 불가의 청정한 법을 보고 감동받아 가선 헌(嘉善軒) 공에게 의지하여 출가하고, 벽봉(碧峯)화상에게서 구족계를 받았다. 벽봉에게는 『금강경』·『능엄경』을 배웠고, 스승의 권유에 따라 서암(西嶽)·추파 홍유(秋波泓宥, 1718~1774)·농암(聾巖) 등 고승을 찾아가 학문을 배웠다.
이후 1768년(23세) 봄 벽봉화상에게 가사와 바리때를 물려받고 강단에 올랐다. 대사의 법맥은 편양파 문중으로, 상봉 정원(霜峰淨源, 1627~1709)의 5세손이 된다.
이후 당시 화엄학의 종주인 설파 상언(雪坡常彦, 1707~1771)을 영원암으로 찾아가 『화엄경』을 8개월 동안 배웠고, 『선문염송』을 배워 마음을 체득하였다. 이후 비슬산·팔공산·학산(鶴山)·용산(龍山)·불령산(佛靈山) 등 여러 산에서 교화를 행하였는데, 주로 팔공산 동화사를 귀의처로 삼아 주석하며 강단을 열었다. 넉넉한 성품으로 학인을 대하여 많은 제자가 휘하에 모여들었으며, 서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어 찾아오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풀이해 주었다.
1790년(정조 14)에 정조가 화성에 용주사(龍珠寺)를 짓고 불상을 만들 때 대사가 증명 법사가 되어 일을 감독했으며, 불복장(佛腹藏) 발원문을 지어 임금의 상찬을 받았다.
1796년 5월 5일 비슬산의 명적암(明寂庵)에서 입적하였다. 세수는 51세, 법랍은 34년이다. 입적 후 용연사와 동화사에 진영을 모셨고, 탑은 용연사에, 비는 동화사에 남아 있다.
문집으로는 『인악집』(동화사, 1797)이 있고, 교학의 성과로는 『능엄경사기(楞嚴經私記)』·『원각사기(圓覺私記)』·『금강경팔해경(金剛經八解鏡)』·『십지기(十地記)』·『화엄경사기(華嚴經私記)』 등이 있다.
18세기 조선시대 불교사에서 거둔 성과 중 하나는 화엄학을 중심으로 한 교학의 진흥에 있다. 대사의 사기 저술은 영남을 중심으로 한 교학의 연찬에 큰 영향을 끼쳤는데, 이는 호남을 중심으로 한 연담 유일의 교학 연구와 쌍벽을 이룬다.
· 집필자 : 신행문화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