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인담 |
|---|---|
| 한자 | 印湛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권실교보살유혹도생지의 |
| 시대 | 조선 후기 |
| 출생 | 17세기 후반(추정) |
| 입적 | 18세기 전반(추정) |
| 주요주석처 | 용연사, 동화사 |
| 탑소재지 | 용연사 |
| 비소재지 | 동화사 |
조선 후기 승려로서 『권실교보살유혹도생지의』의 저자
자세한 생애를 알 수 없는 조선 후기의 불교 승려이다. 저서로 『권실교보살유혹도생지의(權實敎菩薩留惑度生之義)』(기림사, 1724)를 남겼다. 그 간기에는 “갑진(1724) 여름 5월, 설암 문인 인담이 기림사에서 개간”한다고 하였다. 대사는 17세기 후반에 태어나 1724년이 포함된 18세기 전반에 활동한 것으로 추정한다.
이 책을 펴낸 인담의 의문은 “문수나 관음 같은 보살들은 거의 부처와 같은 경지에 오른 이들인데, 이들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남기는 동력(動力)은 도대체 어떤 미혹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이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제시한 것이다. 즉 윤회의 동력을 미혹으로 보고 그 정체를 찾고자 한 것이다. 논리를 전개하며 인용한 경론을 보면 화엄학과 천태학의 교학을 토대로 한 것을 알 수 있다.
사제 관계는 인담 자신의 표현대로 ‘설암의 문인(雪巖門人)’이다. 설암은 석실 명안(石室明安, 1646~1710)의 호로 추정된다. 명안이 지은 『백우수필(百愚隨筆)』(1721)의 문인 명단에 ‘인담(印湛)’이 있어 사제 관계가 확인된다. 양자의 교학적 배경에 화엄학과 천태학이 있다는 점도 사제 관계 확인의 근거가 된다.
조선시대는 일반적으로 화엄학이 융성한 시기로 알려져 있고, 천태학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인담의 글은 천태학과 관련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기 때문에 조선시대 천태학의 전승과 관련하여 중요한 가치를 갖는다.
· 집필자 : 신행문화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