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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하 계오

한글월하 계오
한자月荷戒悟
유형인물
키워드가산고, 석남사
시대조선 후기
출생1773년(영조 49)
입적1849년(헌종 15)
월하(月荷), 가산(伽山), 석면노인(石眠老人), 자-붕거(鵬擧)
19세기 전반 석남사에 주석한 승려로서 『가산고』의 저자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전반에 가지산 일원 사찰, 특히 석남사·통도사 등지에서 활동하였고, 문집 『가산고(伽山藁)』를 통해 19세기 인근의 불교문화 진흥 양상을 잘 드러낸 승려이다. 법명은 계오(戒悟), 법호는 월하(月荷)이다. 다른 호로는 가산(伽山)·석면노인(石眠老人)이 있는데, 가산과 석면은 모두 가지산(伽智山)의 이칭이다. 속성은 권(權)씨, 본관은 안동이며, 시조는 고려 시중(侍中)을 역임하였다. 부친의 휘는 모현(慕賢), 모친은 밀양 박(朴)씨. 대사는 1773년 10월 7일 경주 천태산(天台山) 아래 동네에서 태어났다. 태어날 때 모친이 달이 품 안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고, 산이 울고 수리부엉이가 찾아와 지붕에서 우는 상서가 있었다. 얼굴이 수려하고 타고난 성품이 총명하였으며, 7세부터는 글방에 다니며 하루에 천여 자를 암송하는 재능으로 촉망받았다. 11세에 부모님의 뜻에 따라 머리를 깎고 팔공산 월암수좌(月庵首座)에게 출가하였고, 지봉(智峰)화상의 법을 이어받았다. 지봉화상의 부도가 석남사에 있는 것을 보면 대사 역시 석남사에 주석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봉은 회암 정혜(晦庵定慧, 1685~1741)의 법을 이은 3세손이다. 대사의 계보는 부용 영관(芙蓉靈觀)―부휴 선수(浮休善修)―벽암 각성(碧岩覺性)―모운 진언(暮雲震言)―보광 원민(葆光圓旻)―회암 정혜(晦庵定慧)―미상―지봉 거기(智峰巨磯)―월하 계오로 이어진다. 이후 침허(枕虛)법사에게 구족계를 받고 대덕들의 강석에 참여하여 공부하였다. 식견과 이해가 출중하고 선지(禪旨)를 투철하게 깨달아 20세 남짓에 당(堂)을 열어 학인을 지도하였다. 대사는 영남 일원의 유학자들과 널리 교유하며 문학과 글씨로 이름을 남겼다. 홍직필(洪直弼), 이학규(李學逵), 최남복(崔南復), 김유헌(金裕憲), 허형(許珩) 등이 그의 인품과 학문을 평가해 오래 교유하였다. 필체가 빼어나 많은 비문과 편액을 남겼으며, 초서로 쓴 천자문 판각이 현재 석남사에 보관되어 있다. 60세 이후로는 시문(詩文)이 수행에 방해가 된다고 하여 붓을 놓고 염불과 참선에 전념하였다. 1849년(헌종 15) 2월 4일 세수 77세, 법랍 66년으로 가지산 석남사 연등정사(燃燈精舍)에서 입적하였다. 대사가 남긴 글은 원래 12권이 전하였는데, 제자 희겸(喜謙)이 그중 2권을 판각하여 『가산고』(1852)를 간행하였다. 현재의 문집은 4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사는 19세기 전반에 석남사·통도사·표충사를 근거지로 활동하였으며, 사찰에 필요한 여러 기문을 남겼다. 유학자와 주고받은 시문을 통해 유불선을 넘나들었던 대사의 사상적 넓이와 함께 유불 교류의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 집필자 : 신행문화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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