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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파 태율

한글월파 태율
한자月波兌律
유형인물
키워드월파집
시대조선 후기
출생1695년(숙종 21)
입적1771년(영조 47) 이전
월파(月波)
주요주석처석남사
18세기에 묘향산에 주석한 승려로 『월파집』의 저자
18세기 묘향산에서 활동한 승려로서 전국을 유력하며 교학의 대가들에게 교학을 배우고, 선·교·염불을 동시에 닦은 승려이다. 문집으로 『월파집(月波集)』을 남겼다. 법명은 태율(兌律), 법호는 월파(月波)이다. 1695년(숙종 21) 12월 24일 4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속성은 김(金)씨, 본관은 전주. 아버지 이름은 종건(從建)이고, 어머니는 광화현(光化縣) 이(李)씨다. 광화현은 평안도 태천현(泰川縣)으로 영변, 가산, 구성과 접경하고 있는 도읍이다. 선조의 주거지는 관서(평안도) 청북(淸北: 청천강 이북) 가평군(嘉平郡) 남쪽 5리로 되어 있는데, 대사도 안주와 정주 사이에 있는 가산(嘉山) 가평(嘉平)에서 태어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15세에 묘향산의 삼변장로(三卞長老)를 은사로 하여 출가하였다. 그를 따라 묘향산 불지암(佛智庵)에 들어가 『사기(史記)』를 배웠다. 입산 1년 반쯤 지나 부친상을 당하였고, 장례를 치른 후 비로소 머리를 깎고 운봉화상(雲峰和尙)에게 구족계를 받아 승려가 되었다. 20세 무렵 경전 공부를 위해 운봉 화상을 비롯하여 혜월(慧月)·운파(雲坡)·환암(幻庵) 등 여러 대종사(大宗師)의 법석(法席)에 두루 참여하였고, 사교과(四敎科)·사집과(四集科) 등의 과정을 이수하였다. 29세 때는 곧 환암의 법석에 있을 때인데, 안심사(安心寺: 묘향산 소재)의 부름을 받고 그곳에서 건당하였다. 그 후 1년이 지났을 때 모친상을 당하여 간절한 마음으로 재를 올린 후, 이제는 고향에 구애되는 인연이 없음을 알고 전국을 돌아다녔다. 안릉(안주) 원적사(圓寂寺)에서 강석을 연 환몽법사(幻夢法師)를 찾아가 겨울과 여름 동안 시봉하며 배웠다. 이후에도 다시 법사를 따라 청룡(靑龍), 은적(隱寂), 문수(文殊) 등 여러 절에서 각기 한 철씩 안거하면서 사집과(四集科)를 이수하고 『기신론(起信論)』, 『반야심경(般若心經)』 등을 거듭 학습하였다. 이후 남쪽으로 유람의 길을 떠나 영남과 호남의 승경지를 찾아 두 번씩 왕래하였고, 그 사이 신흥사(神興寺)의 적조(寂照), 강천사(江川寺)의 연대(蓮臺), 관음사(觀音寺)의 무설(無說), 실상사(實相寺)의 내원(內院), 군자사(君子寺)의 영원(靈源), 안국사(安國寺)의 서암(西庵), 송광사(松廣寺)의 보조(普照), 선암사(仙岩寺)의 남암(南菴), 해인사(海印寺)의 관음(觀音) 등지를 유력하였다. 이 과정에서 대사는 당대의 교학 종장들을 두루 접하였다. 무경(無竟)·남악(南岳)·호암(虎岩)·영해(影海)·상월(霜月) 등 여러 대종사의 법석에 두루 참여하였고, 그들에게 『화엄경』·『원각경』·『능엄경』·『반야심경』·『기신론』·『화엄현담』·『선문염송』 등을 청강한 결과, 그들의 ‘선풍(禪風)과 교월(敎月)을 마음과 뱃속에 아울러 환히 밝혔다’라고 자부하였다. 특히 대사는 호암 체정(虎巖體淨, 1687~1748)에게 배운 공이 매우 컸다고 하며, 호암의 영향력을 강조하였다. 호암 체정은 편양당 문중인 환성 지안(喚醒志安, 1644~1729)의 제자이며 대흥사 12강사의 한 분으로, 당시 영호남에서 영향력이 상당했던 인물이다. 이후 대사가 묘향산으로 돌아오자 북방의 학자들이 모두 강석(講席)으로 모여들었다. 대사는 30여 년 동안에 묘향산의 불지(佛智)와 내원(內院), 약산(藥山)의 수국(守國), 양화(陽和)의 원적(圓寂)과 화장(華藏), 송림(松林)의 내원(內院), 송악(松岳)의 반룡(盤龍), 용문(龍門)의 내원(內院)·청정(淸淨)·학수(鶴樹) 등 여러 사찰과 암자의 요청을 받아 강석을 펼쳤다. 당시 대사가 개최한 ‘화엄법회’는 참여하는 사람들이 ‘북방(北方)의 거회(巨會)’라고 일컬을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고, 우러러보는 자들도 많았다고 한다. 이는 18세기 화엄(華嚴) 교학(敎學)이 전국적으로 활발하게 연구되었던 시대적 경향을 반영하는 것이다. 대사의 나이 육십 이후로는 강경(講經)을 그만두고 조용히 생애를 마무리하였다. 이상은 대사가 직접 기록한 「월파평생행적(月波平生行跡)」을 요약한 것인데, 행적의 말미에 대사는 자신의 인생에서 처음과 중간에는 문인이 많았으나 마지막에는 문운(門運)이 불운하여 남은 이가 거의 없다고 자탄하였다. 대사가 남긴 글로는 문집 『월파집』이 유일하다. 1771년(영조 47) 제자들이 견불암에서 판각하였다. 문집은 164편의 시가 위주이며 산문은 「월파평생행적」과 「향산지(香山誌)」 한 편이다. 「향산지」는 자신이 평생 주석한 묘향산의 구석구석에 있는 사찰, 암자의 형태를 묘사하되 시적으로 평가하였다. 그리고 유자들이 알 수 없는 고승들의 자취, 주석처 등을 소개하여 묘향산을 단순한 기행 대상으로 삼은 유자들의 글과 다른 특징이 있다. 묘향산의 불교적 의미를 담은 인문학적 스케치인 셈이다. 대사의 활동 공간은 관서 지역, 즉 묘향산 일원이라는 특징이 있다. 문집은 이 지역의 18세기 불교계 양상을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리고 선교염불을 함께 닦으며, 정비된 이력과정에 따라 체계적으로 교학을 익히고, 특히 화엄교학의 수준이 깊이를 더하던 당시 불교계의 양상을 잘 보여 주고 있다.
· 집필자 : 신행문화팀

관련자료

  • 월파집
    도서 월파 태율, 이상현 역 | 서울: 동국대학교출판부. | 2019 상세정보
  • 동계경일(東溪敬一)·월파태율(月波兌律) 소상팔경시 연구
    학술논문 하성운 | 리터러시연구 | 13-2 | 서울: 한국 리터러시학회. | 2022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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