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운봉 대지 |
|---|---|
| 한자 | 雲峰大智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운봉선사심성론 |
| 시대 | 조선 후기 |
| 출생 | 1606년경 |
| 입적 | 1690년경 |
| 호 | 운봉(雲峰) |
17세기 승려로서 『운봉선사심성론』의 저자
17세기 승려로, 1686년(숙종 12) 목판본으로 간행된 『운봉선사심성론(雲峰禪師心性論)』의 저자이다. 다만 자세한 생애와 근거지, 그리고 활동 양상은 알 수 없다.
청허 휴정(淸虛休靜, 1520~1604)의 제자 중에 편양 언기(鞭羊彦機, 1581~1644)가 있고, 그 문하에 풍담 의심(楓潭義諶, 1592~1665)과 우화 설청(雨花說淸, ?~?)이 있다. 대사는 풍담 의심의 제자이자, 우화 설청의 법 제자로서 청허계·편양계 문중의 일원으로 분류된다.
『운봉선사심성론』의 서문(1686)에 따르면 운봉은 1686년경 80세의 나이에 판을 새기고 간행하여 대중들에게 보이고자 한다고 하였다. 이를 추산하면 대략 1606년 전후에 태어나 1690년 전후에 입적한 것으로 파악된다.
『운봉선사심성론』은 전반부에서 『대승기신론』에 기반을 두고 크게 두 가지 사항을 논하고 있다. 하나는 성리학의 심성론에 비해 불교의 심성론이 철학적 우위에 있음을 밝혔다. 다만 운봉이 불교우월론을 제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나, 전체적으로는 유불일치(선교일치)의 논리를 제시한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다른 하나는 당시 불교계 내부에 있었던 일법신설(一法身說) 대 다법신설(多法身說)의 심성 논쟁을 소개한 것이다. 전자는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법신은 전체적으로 합하면 하나가 된다’는 관점이고, 후자는 ‘사람마다 각각 원만하다’는 관점이다. 일법신설은 법신이 하나임을 주장하는 것이고, 다법신설은 사람마다 각각 법신을 가지고 있으므로 법신이 여럿이 된다는 주장이다. 운봉은 일법신설을 강하게 비판하며 다법신설을 주장하였다.
『운봉선사심성론』의 간기에 보면 대사의 제자로 신수(神秀), 신회(神會), 일선(一禪) 등이 있다. 대사와 교류했던 승려로는 서암 계곡(栖岩溪谷), 숭곡 허주(崇谷虛舟), 옥봉(玉峰), 응진(應眞), 광평(廣坪), 금봉(金峰) 대사 등이 있다. 교류한 유학자, 문장가로는 호곡(壺谷) 남용익(南龍翼, 1628~1692), 백헌(白軒) 이경석(李景奭, 1595~1671), 호주(湖洲) 채유후(蔡裕後, 1599~1660), 설봉(雪峰) 강백년(姜栢年, 1603~1681) 등이 있다. 시를 통한 유불 교류의 양상이 대사의 저서에 함께 담겨 있다.
대사의 심성론은 함허당 득통의 『유석질의론(儒釋質疑論)』에 제기된 불교적 심성론의 전통을 계승하였고, 18세기 연담 유일(蓮潭有一, 1720~1799)과 묵암 최눌(黙庵最訥, 1717~1790)의 심성 논쟁으로 이어지는 불교사적인 의의가 있다.
· 집필자 : 김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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