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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허 해일

한글영허 해일
한자暎虛海日
유형인물
키워드영허집
시대조선 중기
출생1541년(중종 36)
입적1609년(광해군 1)
영허(暎虛), 보응(普應)
주요주석처포항 보경사(寶鏡寺)
탑소재지포항 보경사
부설거사 이야기가 담긴 『영허집』의 저자
16세기 후반과 17세기 초, 부안 능가산(楞迦山, 변산) 실상사(實相寺)와 청허 휴정(淸虛休靜, 1520~1604)이 주석하던 묘향산 상비로암(上毗盧庵) 등지에서 수행하며, 「부설전(浮雪傳)」과 「유산록(遊山錄)」 등이 수록된 『영허집(暎虛集)』을 남긴 고승이다. 법명은 해일(海日), 호는 영허(暎虛)이며, 당호는 보응(普應)이다. 1541년(중종 36) 9월 4일 전라도 만경현(萬頃縣, 김제) 불기(不欺) 마을에서 태어났다. 성은 김씨, 사족의 후손이며, 집안은 유학을 업으로 삼았다. 어머니는 홍(洪)씨. 대사의 나이 15세에 과거를 보았으나 합격하지 못하였고, 19세에 부안 능가산 실상사에 입산하여 인언(印彦)대사에게 머리를 깎고 5년간 시봉하였다. 그러나 경론을 열람하다가 문득 무상함을 느끼고 고승 대덕을 찾아다니며 배우고자 하였다. 이후 지리산에서는 부용 영관(芙蓉靈觀, 1485~1571)에게 3년간 교(敎)와 선(禪)을 배우며 탐구하였고(24~26세, 1564~1566), 금강산에서는 학징(學澄)대사에게 계율을 공부하였다.(27세, 1567 추정) 묘향산에서는 청허 휴정에게 팔만대장경의 의문점을 묻고 해결하였다고 전한다.(27~28세, 1567~1568 추정) 이후 묘향산 상비로암에서 10년 동안(1568~1577) 주석하였는데, 그 기간에도 틈틈이 전국을 유람하며 수행에 정진하였다. 이 시기 유력의 자취는 『영허집』 「유산록」에 〈두류산〉(1570), 〈묘향산〉(1574), 〈금강산〉(1571~1573 추정) 순으로 실려 있다. 대사는 1589년(49세) 실상사로 돌아온 이후에도 팔도를 만행하면서 한 곳의 산문에서 한 철씩 하안거 결제를 하였고, 비구 거사와 함께 정토 수행을 실천하였다.(51~64세, 1591~1604) 1589년(49세) 실상사에서 『지장경(地藏經)』을 읽던 어느 날 밤에 지장보살이 꿈에 나타나 감로수(甘露水)를 머리에 부어 주었는데, 이때 마음속이 확 트이며 걸리는 게 없어지는 체험을 하였다고 한다. 1605년(65세) 실상사에서 경론을 강의하였다. 1607년(67세) 봄부터 3년간은 광덕산(廣德山) 연대암(蓮臺庵)에서 머무르다 1608년(68세) 6월에 두류산 대암(臺巖)으로 들어가 수도하였고, 그곳에서 1609년(69세) 2월 5일 입적하였다. 대사가 남긴 문집은 『영허집』이다. 발행지 미상이며, 1635년(인조 13) 간행되었다. 이 문집은 이 시기 불가(佛家) 시문집이 드문 상황에서 발행된 자료적 가치가 있고, 다양한 시와 산문 형식을 수록하고 있어 불가 내 문학 향유의 양상을 살펴볼 수 있다. 특히 「부설전」은 성불한 부설거사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 불교 사상과 문학사 면에서 의의가 큰 작품이다. 「유산록」 3편은 불가 유산기로서 자료적 가치가 있다.
· 집필자 : 김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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