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역산 선영 |
|---|---|
| 한자 | 櫟山善影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석왕사, 역산집 |
| 시대 | 조선 후기 |
| 출생 | 1792년(정조 16) |
| 입적 | 1880년(고종 17) |
| 호 | 영허(映虛), 역산(櫟山). 자-무외(無畏) |
19세기 석왕사를 중심으로 활동한 승려로 『역산집』의 저자
청허 휴정(淸虛休靜, 1520~1604)과 환성 지안(喚醒志安, 1664~1729)의 정맥을 이어받은 19세기 고승으로, 만년에는 주로 함경도 안변의 석왕사(釋王寺)에서 주석하였고, 다양한 문체의 작품을 창작한 결과를 문집 『역산집(櫟山集)』으로 남겼다.
법명은 선영(善影), 자는 무외(無畏)이며, 호는 역산(櫟山)과 영허(暎虛)이다. 속성은 임(林)씨이고, 본관은 안동. 부친 이름은 득원(得元)이며, 어머니는 한양 조(趙)씨다. 1792년(정조 16) 3월 23일 한양 운관현(雲觀峴)에서 출생하였다. 현재의 운현동(雲峴洞)으로 추정된다.
12세에 용운 승행(龍雲勝行)을 따라 출가한 후 양주 학림암(鶴林庵)에서 머리를 깎았다. 성암 덕함(聖巖德函)에게 구족계를 받았고, 화악 지탁(華嶽知濯, 1750~1839)에게 선을 전수받았다. 이후 제방을 돌아다니며 경전과 공안을 참구하여 성취가 있었고, 21세에 인봉 덕준(仁峯德俊)의 문하에서 건당(建幢)하고 법맥을 이었다.
대사는 청허의 문파이며 환성 지안의 6세손이 된다. 계보는 환성 지안―함월 해원(涵月海源)―완월 궤홍(翫月軌泓)―뇌묵 등린(雷默等麟)―인봉 덕준―대사로 이어진다. 젊은 시절에는 주로 남쪽 지방을 유력하였고, 만년에는 함경도 안변 석왕사의 내원암(內院菴)에 머물렀는데, 그곳은 곧 함월당과 완월당이 머물렀던 터였다. 대사는 관북에 오랫동안 주석하였지만 그 명성이 지방에까지 떨쳤던 것으로 행장에 기록되어 있다.
대사는 1880년(고종 17) 5월 7일에 입적하였다. 세수는 89세, 법랍은 78년이다. 전법 제자는 13명, 수참(受懺) 제자는 80여 명이 있다. 문집으로 『역산집』을 남겼다.
『동사열전(東師列傳)』에 따르면 대사의 탑비는 설봉산 동편 기슭에 있으며, 진영은 석왕사와 대둔사의 영각에 걸려 있다고 한다. 비명(碑銘)은 대사 재세(在世) 시인 1873년(고종 10)에 세웠는데, 앞면의 글씨 ‘유명조선국 조계종사 화엄강백 영허당대선사지비(有明朝鮮國曹溪宗師華嚴講伯映虛堂大禪師之碑)’는 고종이 직접 써서 하사했으며, 비문은 이유원(李裕元, 1814~1888)이 지었다.
대사는 뛰어난 시문 창작 능력으로 불가 내의 고승은 물론 김정희, 권돈인 등 당대의 문사들과 교류한 자취가 있다. 흥국사를 비롯한 서울, 경기의 몇몇 사찰과 주석했던 석왕사 관련 기문을 남겨 19세기 불교문화에 대한 충실한 기록자 역할을 담당하였다.
· 집필자 : 김종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