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만해 한용운 |
|---|---|
| 한자 | 卍海龍雲 |
| 유형 | 인물 |
| 시대 | 근대 |
| 출생 | 1879년 7월 20일(음) |
| 입적 | 1944년 6월 29일 |
| 호 | 봉완(奉玩), 만해(卍海), 만해(萬海) |
| 주요 주석처 | 남양주 봉선사, 서울 수국사 |
| 비 소재지 | 남양주 봉선사, 서울 수국사 |
독립운동과 불교혁신 실천한 스님이자 문인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과 불교혁신을 실천한 스님이자 문인이다.
1879년 7월 20일(음) 충청남도 홍주목 주북면 옥동(충청남도 홍성군 홍성읍 오관리)에서 부친 한응준과 모친 방씨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 한학을 공부하고, 18세에 마을 서당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1903년 세계여행차 원산을 거쳐 블라디보스토크에 갔다 고초를 겪고 귀국했다.
고향으로 돌아와 머물다 1905년 설악산 백담사 주지 연곡(蓮谷)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영제(永濟) 스님을 계사로 수계하고, 학암(鶴庵) 스님에게 교학을 배웠다. 건봉사 만화(萬化) 스님의 법을 잇고, 백담사와 오세암 등에서 경전과 외전을 익혔다.
1908년 유점사에서 월화(月華) 스님에게 『화엄경』을 배우고, 일본을 방문해 조동종대학림(曹洞宗大學林)에서 수학하고 9월에 귀국했다. 1909년 금강산 표훈사 강사를 지내고, 1910년 백담사에서 『조선불교유신론(朝鮮佛敎維新論)』을 저술했다.
1911년 친일 승려들의 한일불교병합 움직임에 맞서 영호(暎湖), 진응(震應), 금봉(錦鋒) 스님 등과 임제종(臨濟宗) 운동을 전개했다. 1912년 통도사에서 대장경을 열람하고 『불교대전』을 편찬했다. 통도사 강사(1913), 불교강연회 총재(1913), 조선불교회장(1914), 조선선종중앙포교당 포교사(1915), 중앙학림 강사(1918)를 역임했다.
1918년 9월 잡지 『유심(唯心)』을 창간하고, 1919년 3.1독립운동에 민족대표(33인)로 참여했다. 서대문형무소 투옥 당시 옥중에서 ‘조선독립의 서[朝鮮獨立之書]’를 지어 배포했다. 1922년 석방돼 조선물산장려운동과 민립(民立)대학 설립에 참여했다. 1924년 10월 첫 소설 『죽음』을 탈고하고, 1926년 5월 회동서관(匯東書館)에서 『님의 침묵』을 펴냈다. 신간회(新幹會)에 참여(1927년 중앙집행위원, 경성지회장)하고, 1929년 광주 학생의거 당시 김병로(金炳魯), 조병옥(趙炳玉) 등과 민중대회를 준비하다 체포됐다.
1931년 6월 『불교』를 인수해 사장에 취임하고, 7월에 전주 안심사 한글경판을 조사했으며, 그해 9월 나병구제연구회를 만들어 부산·대구·여수 등에 간이수용소 설치를 추진했다. 이 해에 비밀 항일단체 만당(卍黨)의 영수로 추대되어, 1937년 체포됐다 석방됐다.
1933년 성북동에 심우장(尋牛莊)을 짓고 거처로 삼았다. 1935년 4월 9일부터 1936년 2월 1일까지 『조선일보』에 장편소설 「흑풍(黑風)」을 연재했다. 1936년 단재 신채호의 묘비를 세우고, 정인보·안재홍 등과 다산 정약용의 서세백년기념회(逝世百年紀念會)를 개최했다.
1944년 6월 29일 서울 성북동 심우장에서 입적했다. 세수 66세, 법랍 40년. 화장 후, 망우리 공동묘지에 안장했다. 『흑풍(黑風)』, 『후회』, 『박명(薄命)』, 『죽음』 등 소설을 비롯해 다수의 저서가 있다.
· 집필자 : 이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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