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한암 중원 |
|---|---|
| 한자 | 漢巖重遠 |
| 유형 | 인물 |
| 시대 | 근현대 |
| 출생 | 1876년 3월 27일 |
| 입적 | 1951년 3월 22일 |
| 호 | 한암(漢巖) |
| 주요주석처 | 설악산 백담사, 서울 선학원 |
| 비소재지 | 서울 탑골공원(1967), 홍성 추모 사당 만해사(萬海祠)(1995), 인제 백담사 |
선교 겸비하고 조계종 초석 놓은 고승
선교(禪敎)에 능통하고 한학에 깊은 조예를 가졌으며, 조계종의 초석을 놓은 고승이다.
1876년 3월 27일 강원도 화천에서 태어났다. 속성은 방씨(方氏). 9세(1885)에 마을 서당에서 『사략(史略)』을 읽다 반고씨(盤古氏, 중국 신화에 나오는 최초의 창세신) 이전의 면목에 의심을 가졌다.
22세(1898)에 금강산 장안사에서 행름(行凜)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금강산 신계사 보운강회(普雲講會)에서 보조국사의 『수심결(修心訣)』을 읽으며 감동을 느꼈다. 23세(1899)에 김천 청암사 수도암에서 경허(鏡虛) 스님 법문을 듣고 마음이 열렸다. 1905년부터 1910년까지 통도사 내원선원에서 대중을 지도한 후, 평북 맹산군 우두암(牛頭庵)에서 대오(大悟)했다.
금강산 건봉사 조실(1921)에 이어 광주(서울) 봉은사 조실(1925)로 추대됐지만 “천고에 자취를 감춘 학이 될지언정 춘삼월에 말 잘하는 앵무새는 배우지 않겠다.”라고 설한 후 오대산 상원사로 주석처를 옮겼다. 이후 입적할 때까지 27년간 산문(山門)을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1926년 오대산 상원사에서 선(禪)·염불·간경(看經)·의식(儀式)·가람 수호 등을 담은 ‘승가오칙(僧伽五則)’을 제정해 후학들의 수행 지침으로 제시하고, 1929년 조선불교 승려대회에서 교정(敎正)으로 추대됐다. 1930년 『불교(佛敎)』 제70호에 「종조론(宗祖論) 해동초조(海東初祖)에 대하여」를 기고해 한국불교의 종조를 확립했다.
1931년 「선사 경허화상 행장」을 찬술하고, 조선불교선리참구원 부이사장(1934), 조선불교선종 종정(1935), 조선불교조계종 종정(1941)에 추대됐다. 건봉사·신흥사·유점사 등 강원도 삼대본사(三大本寺) 공동으로 승려수련소를 설치해 인재 양성에 나섰으며, 1948년 조계종 교정에 추대됐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했지만 상원사를 떠나지 않고 수행에 매진했다. 1.4 후퇴 무렵 군 당국에서 작전상 이유로 상원사를 소각하려고 했을 때, 전각 안에서 나오지 않고 “나까지 태우라.”라고 하여, 이에 감화받은 군인들이 문짝만 떼어내 태우고 돌아갔다. 1951년 3월 22일(음 2월 15일) 상원사에서 참선하는 자세로 원적에 들었다. 세수 75세, 법랍 54년. 희찬·희섭·범룡·평등성 보살 등이 다비를 모셨고, 부산 묘각사에서 49재를 맞아 봉도법회를 봉행했다.
· 집필자 : 이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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