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학명 계종 |
|---|---|
| 한자 | 鶴鳴啓宗 |
| 유형 | 인물 |
| 시대 | 근대 |
| 출생 | 1867년 |
| 입적 | 1929년 |
| 호 | 학명(鶴鳴) |
| 주요 주석처 | 오대산 상원사 |
| 비 소재지 | 오대산 월정사, 상원사(1959년 건립 후 2000년 새로운 비를 세우며 철거) |
선농일치 실천하며 후학 양성한 고승
선농일치를 실천하며 조선불교의 정체성을 수호하고 후학을 양성한 고승이다.
1867년 전남 영광군 불갑면 방마리 방뫼마을 223번지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백중수(白重洙), 모친은 한양 조씨(漢陽趙氏). 속명은 백낙채(白樂彩). 1886년 부친 별세 후 어머니와 동생을 돌보기 위해 붓장사에 나섰다. 이때 순창 구암사 강원에서 공부하는 스님들을 보고 출가를 결심했다.
고향으로 돌아와 속세 일을 정리하고, 1887년 2월 영광 불갑사에서 환송 스님 허락을 받고, 금화 스님에게 계를 받으며 출가했다. 3년간 불갑사에 머물고 구암사 강원에서 교학을 배웠다. 이후 지리산 영원사, 벽송사, 조계산 선암사, 송광사 강원에서 공부하고 설유(雪乳) 스님에게 구족계를 받았다. 금화 스님에게 건당해 백파(白坡)선사의 7대 법손(法孫)이 됐다. 이때 받은 법호가 학명(鶴鳴)이다.
순창 구암사와 장성 백양사 운문암에서 강회(講會)를 열고 학인을 지도하고 하동 쌍계사, 부안 내소사, 변산 월명암, 백양사 운문선원 등에서 수행했다. 1915년 만허(滿虛) 스님에게 보낸 1편의 글과 3장의 엽서가 전한다. 만허 스님은 해안(海眼, 1901~1974) 스님의 스승으로 부안 내소사 중창주이다.
만응(萬應)·만암(曼庵) 스님과 가까이 지내며 조선불교를 지키려고 노력했으며, 선우공제회(이후 선학원)에도 참여했다. 1923년부터 정읍 내장사를 중수하고, 논과 밭을 개간하는 등 ‘일과 선(禪)’이 둘이 아니라는 선농일치(禪農一致) 사상을 실천했다. 1927년 사월초파일을 맞아 서울 각황사에서 설법을 했다는 『동아일보』 기사(1927.5.8)가 전한다. 1929년 정읍 내장사에서 세수 63세, 법랍 43년으로 입적했다.
· 집필자 : 이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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