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청담 순호 |
|---|---|
| 한자 | 靑潭淳浩 |
| 유형 | 인물 |
| 시대 | 근현대 |
| 출생 | 1902년 10월 20일 |
| 입적 | 1971년 11월 15일(양) |
| 호 | 올연(兀然), 청담(靑潭) |
| 주요 주석처 | 경기도 광주(현재 서울) 봉은사 |
| 비 소재지 | 서울 봉은사(나청호대선사수해구제공덕비) |
정화운동 주도하며 대중을 인도한 고승
20세기에 정화운동을 주도하며 대중을 인도한 고승이다.
1902년 10월 2일(음) 경남 진주에서 부친 이화식(李化植)과 모친 고부용(高芙容) 의 1남 3녀 가운데 장남으로 출생했다. 속명은 이찬호(李讚浩). 법명은 순호(淳浩), 법호는 청담(靑潭)이다.
1918년 진주 제일보통학교에 입학해, 1919년 3.1만세운동에 가담했으며, 1921년 진주 농림학교에 입학해 호국사 박포명 스님 법문을 듣고 출가의 뜻을 세웠다. 1923년 부친 별세 후 농업학교장 소개로 일본 효고현 쇼운지(松雲寺)에서 아키모도 준가(秋元淳稚) 스님 문하에서 행자 생활을 했지만 중도에 돌아왔다.
1926년 경남 고성 옥천사(玉泉寺)에서 출가하고, 경성 개운사 대원불교전문강원에서 박한영 스님에게 경율론 삼장을 사사했다. 1927년 조선불교학인대회를 개최하고 조선불교학인연맹 결성을 주도했다. 1928년 한중 국경 인근에서 수월(水月) 선사를 친견하고 1년간 정진하고 돌아와 제2차 학인대회(1929)를 열었다.
양주 봉선사에서 박한영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하고, 설악산 봉정암(1930)·금강산 마하연(1931)·오대산 상원사(1932)·설악산 봉정암(1932)·묘향산 보현사(1932)에서 화두를 참구했다. 1931년에는 서울 선학원에서 열린 조선불교선종 제1회 수좌대회에 참석했다. 1934년 덕숭산 수덕사 정혜선원에서 용맹정진 후 올연(兀然)이란 호를 받았다.
1941년 일제의 불교정책에 대응해 선학원에서 열린 유교법회(遺敎法會) 준비위원을 맡았다. 1942년 속리산 복천암에서 동안거 수행을 했고, 이듬해인 1943년 독립운동 혐의(금강회사 건)로 상주경찰서로 연행됐다.
1948년 성철, 자운, 향곡 스님 등 30여 명의 수좌들과 봉암사에서 결사를 했다. 1954년 불교교단정화추진위원회에 동참하며 불교정화의 선봉에 나섰다. 1954년 9월 30일 임시 중앙종회에서 도총섭(都摠攝)에 선출됐으며, 청담(靑潭)이라는 법호를 처음 사용했다. 조계종 종회 의장(1956), 제4차 네팔 세계불교도대회 한국 대표(1956), 해인사 주지(1957~1960), 서울 도선사 주지(1961), 불교재건비상중앙종회 의장(1962), 전국승려 대표자대회 의장(1963), 재단법인 선학원 이사장(1965), 중앙종회 의장(1966), 제2대 조계종 종정(1966)을 역임했다.
이 밖에도 도선사 호국참회원 건립 기공(1968), 국민교육헌장 제정심의위원(1968), 한국불교총연합회 이사장(1969)을 지냈다. 1969년 8월 종단의 정화이념이 퇴색한다며 종단 탈퇴를 선언했다. 1970년 동국불교방송 설립위원장으로 취임하고, 그해 7월 종단에 복귀해 중앙종회에서 총무원장으로 선출됐다. 1970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훈했다. 1971년 11월 15일 도선사에서 원적에 들었다. 세수 70세, 법랍 45년. 11월 19일 동국대에서 종단장이 엄수됐다.
· 집필자 : 이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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