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이종욱 지암

한글이종욱 지암
한자李鍾郁 智庵
유형인물
시대근현대
출생1884년 1월 13일
입적1969년 9월 24일(음)
지암(智庵), 해운(海雲), 해관(海觀), 고경(古鏡)
주요주석처영천 은해사, 합천 해인사(지족암), 양산 통도사, 하와이 금강굴
비소재지영천 은해사, 합천 해인사
한국불교 정체성 확립에 기여한 고승
주로 20세기에 활동하며 월정사 발전과 한국불교 정체성 확립에 기여한 고승이다. 1884년 1월 13일 강원도 양양군 현북면 상광정리에서 부친 이영록과 모친 경주 김씨 아들로 태어났다. 속명은 이학순(李學順). 13일 만에 모친이 세상을 떠나, 김경윤(金敬允)의 양자가 되었지만, 1889년 양부와 양모, 1890년에는 양조모가 별세했다. 13세에 양양 명주사에서 백월 병조(白月炳肇) 스님에게 출가하고, 대은(大隱) 스님 뜻에 따라 오대산 월정사에서 월운(月雲) 스님을 시봉했다. 1898년 명주사에서 보룡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1905년 순천 송광사에서 회광 스님에게 비구계와 보살계를 받았다. 1900년(17세)부터 1911년(28세)까지 경운, 석상, 진하 스님 등 강백들에게 교학과 외전(外典)을 이수했다. 1905년 순천 선암사 경운 스님 회상에서 공부했다. 1908년 설악산 오세암에서 설운 봉인(雪耘奉忍) 스님의 법맥을 이었다. 법호는 지암(智庵). 30세(1913)에 월정사 주지 대리를 맡았고, 1915년 월정사에 불교전문강원을 개설해 『보조국사법어』와 한글로 된 『초발심자경문』을 강의했다. 1919년 3.1만세운동에 참여하고, ‘한성임시정부’에 가담하는 등 독립운동에 나섰다. 상해임시정부와 국내 비밀조직을 연결하는 연통제 활동을 했으며, 김상옥의 종로경찰서 폭파 사건에 연루되어 3년간 옥고를 치렀다. 출감 후 월정사 부채를 정리하고 조선불교선교양종승려대회에 월정사 대표로 참여했다. 조선불교 총본산 건립에 나서 종명(宗名)을 조계종(曹溪宗)으로 하고, 태고사(太古寺, 지금의 조계사)를 총본산으로 삼는 데 일조했다. 국민동지회를 조직해 무장봉기를 도모하다 해방을 맞았다. 1945년 해방될 때까지 월정사 주지를 다섯 차례 역임했다. 해방 이후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총무부장, 제2대 국회의원, 동국학원 이사장 등을 역임하고 주문진 동명사에서 말년을 보내고, 구례 화엄사에서도 지냈다. 1969년 9월 24일(음) 구례 화엄사에서 입적했다. 세수 86세, 법랍 74년.
· 집필자 : 이성수

관련자료

  • 조계종의 산파 지암 이종욱
    도서 박희승 | 서울: 조계종출판사 | 2011 상세정보
  • 지암화상평전(智庵和尙評傳)
    도서 이종욱·지암화상문도회 | 서울: 삼장원 | 1991 상세정보
  • 한국고승비문총집
    도서 지관 편 | 서울: 가산불교문화연구원 | 2000 상세정보
  • 더보기  +

지리정보

    • 내용
  • 위로
  • 불국토
    문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