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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인

한글이동인
한자李東仁
유형인물
시대근대
출생1849년?
입적1881년
천호(淺湖)
주요 주석처평창 월정사, 주문진 명주사
비 소재지평창 월정사
한국 근대화에 이바지한 구도승
19세기에 활동하며 한국 근대화에 이바지한 구도승이다. 1849년 경남 양산에서 출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속명은 이동인(李東仁)이다. 어린 시절 출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법명은 천호(淺湖)이다. 출가 사찰도 양산 통도사, 동래 범어사로 엇갈리며, 1860년대부터 한성(서울) 봉원사에 주석했다고 한다. 일본 혼간지(本願寺) 부산별원 승려 오쿠무라 엔신(奥村円心, 1843~1913)이 저술한 『조선국포교일지(朝鮮國布敎日誌)』에는 통도사 출신이라고 기록돼 있다. 『조선국포교일지』는 1877년부터 1887년까지 조선 포교 활동과 조선인 접촉을 일지 형태로 기록한 문헌이다. 구한말 개화파와 인연이 깊어 김옥균·박영효와 교유하였으며, 1879년 6월 오쿠무라 엔신과 일본으로 건너갔다. 교토에 10개월간 머물며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이후 근대 일본사회를 체험했다. 1880년 4월 도쿄(東京)로 이동해 혼간지 승려들을 통해 일본 정치인들을 만났다. 그해 8월 수신사로 일본에 온 김홍집(金弘集)을 만나 9월에 조선으로 돌아왔다. 귀국 후 김홍집 소개로 명성황후 측근인 민영익과 연결돼 일본 국내 사정과 세계 각국의 상황을 고종에게 보고하며 신뢰를 받았다. 1880년 10월 고종의 밀명을 받고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주재 청나라 공사 하여장(何如璋)을 만나 ‘조선·미국 조약 체결’을 요청했다. 도쿄에서 일본 정부 관계자들을 만나 친교를 맺고, 1880년 12월 18일 부산으로 귀국했다. 개항 후 설치된 통리기무아문의 참모관(參謀官)으로 임명돼 미국과의 조약 초안을 작성한 것으로 전한다. 이 초안은 1881년 1월 김윤식(金允植)이 청나라 이홍장과 조약 내용을 검토할 때 제시됐다. 이와 더불어 개화를 위해 신사유람단과 유길준(兪吉濬), 윤치호(尹致昊) 등 젊은 유학생의 일본 파견을 추진했다. 정부 기구 개편과 군사력 강화를 위해 별기군 설치 및 무기와 군함 구입 결정에 따른 임무를 수행하다 행방이 묘연해졌다. 개화정책에 반대한 대원군 세력 또는 온건 개화 입장인 김홍집, 이조연 세력에 암살됐다는 설이 전한다.
· 집필자 : 이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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