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퇴옹 성철 |
|---|---|
| 한자 | 退翁性徹 |
| 유형 | 인물 |
| 시대 | 근현대 |
| 출생 | 1912년 2월 19일(음) |
| 입적 | 1993년 11월 4일 |
| 호 | 퇴옹(退翁) |
| 주요주석처 | 서울 화계사 |
| 탑소재지 | 서울 화계사 |
간화선 선양하며 한국불교 외연 확장한 선승
간화선을 수행·선양하며 한국불교의 외연 확장과 중흥에 앞장선 선승이다.
1912년 음력 2월 19일(양력 4월 6일) 경남 산청군 단성면 묵곡리에서 아버지 이상언(李尙彦)과 어머니 강상봉(姜相鳳)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속명은 이영주(李英柱).
1926년 단성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진주중학교 입학시험에 합격했지만 신체검사에서 탈락해 요양차 지리산 대원사를 드나들었다. 1935년 최범술 스님의 권유로 해인사에 갔으며, 퇴설당에서 재가신도로 정진하던 중 1936년 3월 동산(東山) 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받고 출가했다. 동산 스님을 따라 범어사로 옮겨 금어선원에서 하안거를 하고, 범어사 원효암에서 동안거 정진을 했다. 1937년 3월 15일 범어사 금강계단에서 비구계를 수지하고, 범어사 원효암에서 용성 스님을 시봉하며 하안거 수행을 했다.
이후 통도사 백련암(1937), 범어사 내원암(1938), 금강산 마하연(1939), 동화사 금당선원(1940), 은해사 운부암(1940), 송광사 삼일암(1941), 덕숭산 정혜사(1941), 서산 간월암(1942), 속리산 복천암(1943), 선산 도리사(1943), 문경 대승사(1944), 대승사 묘적암(1945), 팔공산 성전암(1946)에서 안거를 했다.
1947년 가을 문경 봉암사에서 청담, 자운, 우봉 스님과 공주규약을 제정하고 ‘부처님 법대로 살자’를 목표로 결사를 했다. 향곡(香谷), 월산(月山), 종수(宗秀), 도우(道雨), 보경(寶境), 법전(法傳), 성수(性壽), 혜암(慧菴) 스님 등 20여 명이 함께한 봉암사 결사이다. 빨치산의 잦은 출현으로 결사는 1949년 중단됐다.
고성 문수암(1950), 안정사 은봉암(1951), 천제굴(1952, 1953, 1954), 창원 성주사(1952)에서 정진하고 1955년부터 1964년까지 파계사 성전암에서 철조망을 치고 10년간 두문불출하며 수행했다. 1957년 청담 스님이 주석하는 서울 도선사로 옮겨 정진하고, 청담 스님과 도선사에 승려교육기관인 실달학원(悉達學園)을 설립했다.
문경 김용사 조실(1964~1966)에 이어 1967년 7월 중앙종회에서 해인총림 설치가 결의되면서 방장에 추대됐다. 방장으로 있으면서 안거마다 보름과 말일에 상당법어를 했으며, 동안거 기간 중에는 백일법문을 했다. 1981년 1월 20일 조계종 제6대 종정에 추대됐지만 취임법회는 참석하지 않고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법어를 전해 화제가 됐다. 1991년 8월 제7대 조계종 종정으로 추대됐다. 1993년 11월 4일 해인사 퇴설당에서 법랍 58년, 세수 81세로 입적했다.
· 집필자 : 이성수
관련자료
더보기 +
-
나 홀로 가노라 만고의 진리를 향해 : 성철스님 열반 추모록
-
성철스님 시봉이야기
-
한국고승비문총집
-
자기를 바로 봅시다 : 성철스님 법문집
더보기 +
더보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