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박한영 |
|---|---|
| 한자 | 朴漢永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임제종, 교정, 개운사, 불교중앙학림, 대강백 |
| 시대 | 근대 |
| 출생 | 1870년 |
| 입적 | 1948년 |
| 호 | 석전(石顚), 영호(映湖), 정호(鼎鎬) |
| 주요주석처 | 장성 백양사 |
조선불교 정체성 수호하며 교학 진흥한 대강백
조선불교의 정체성을 수호하며 교학을 진흥한 대강백(大講伯)이다.
1870년 8월 18일 전북 완주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박성용, 모친은 진양 강씨. 속명은 박한영(朴漢永)이다.
17세에 전주 위봉사에서 금산(錦山) 스님 법문을 듣고 출가를 결심하고, 이듬해 완주 태조암에서 금산 스님 제자로 득도했다. 그 뒤로 장성 백양사 환응(幻應) 스님과 선암사 경운(擎雲) 스님에게 교학을 이수하고, 1895년 순창 구암사에서 설유(雪乳) 스님의 법맥을 이어받은 대강백이다.
1908년 만해(卍海)·금파(琴巴) 스님 등과 불교개혁에 나섰으며, 1910년 10월 6일 친일 승려 이회광이 일본 조동종과 맹약을 체결한 것에 대항해 만해·성월(惺月)·진응(震應)·금봉(錦峯) 스님과 임제종(臨濟宗) 운동을 펼치며 조선불교를 지키고자 했다. 1920년 4월 1일 자 『동아일보』 창간호에 축사를 게재했다.
동국대 전신인 불교고등강숙(佛敎高等講塾)(1914), 불교중앙학림(1919), 중앙불교전문학교(1932~1938) 교장을 역임했다. 1926년 경성 개운사 불교전문강원 강사로 후학을 지도하며 20여 년간 인재 양성에 주력했다. “교육을 진흥시키는 자는 마땅히 불도(佛道)를 이루리라.”라고 강조하며 후학 양성에 진력했다.
1929년 1월에는 조선불교승려대회에서 교정(敎正)으로 추대되고, 1941년 유교법회(遺敎法會)에 참석했다. 1945년 초 정읍 내장사에서 매곡(梅谷) 스님에게 “여기서 세상 뜨려고 왔네.”라며 만년을 보냈다. 광복 후 전국승려대회에서 교정으로 다시 추대됐다.
1948년 4월 8일 내장사에서 원적했다. 세수 79세, 법랍 61년. 서울 태고사(지금의 조계사)에도 호상소(護喪所)가 설치됐다. 1948년 4월 11일 자 『조선일보』는 부고를 전하면서 “불교계 유일의 대학자로 기미 3.1혁명 때부터 조국독립운동에 분주하였다.”라고 보도했다. 저서로 『정선치문집설』, 『정선염송급설화』, 『석전시초』, 『석전문초』, 『계학약전』 등이 있다.
강맥은 운허 용하, 운기 성원, 운성 승희, 고봉 태수, 성능 복문, 철운 현종, 명봉, 학봉 스님으로 이어졌다.
· 집필자 : 이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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