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만암 종헌

한글만암 종헌
한자曼庵宗憲
유형인물
키워드백양사, 고불총림, 백학명, 선농일치, 불교정화운동
시대근대
출생1876년(고종 13)
입적1957년
만암(曼庵), 목양산인(牧羊山人)
주요주석처서울 개운사, 정읍 내장사
탑소재지고창 선운사
중앙불전 교장, 조계종 종정을 역임한 근대 고승
근대 불교계의 교육불사에 힘을 썼고, 고불총림(古佛叢林)을 결성하여 백양사를 중흥시켰으며, 해방 후 조계종 종단의 요직을 맡아 불교 발전을 위해 힘쓴 승려이다. 1876년 전북 고창에서 태어났다. 속성은 여산 송씨. 1886년 취운 도진(翠雲道珍)을 은사로 하여 백양사에서 출가하였다. 1891년부터 7년간 석전 한영(石顚漢永) 문하에서 사교과(四敎科)를 수료하였고, 23세 때 운문암에서 환응(幻應) 강백에게 전강을 받았다. 이후 백양사 운문암과 청류암에서 강의하였고, 1907년에는 해인사 강원에서 강의하였다. 후에 내장사 주지가 된 학명 계종(鶴鳴啓宗: 백학명, 1867~1929)과 함께 참선 수행을 하였고, ‘이 뭣꼬’를 참구한 지 7년 만에 오도송을 읊었다. 1916년 백양사 주지에 취임한 후 일제 말까지 27년간 백양사 주지를 역임하면서 중창불사를 추진하였다. 만암은 수행과 생산을 겸행하는 선농일치(禪農一致) 운동을 전개하였다. 승단의 재정 자립을 위해 전남여객버스회사와 동광유지 등을 설립, 중생 구제와 교화에 노력하였다. 백양사 인근의 마을 사람들에게 보시하기 위해 멀쩡한 보(洑)를 수리하게 하고 유실수를 심는 등 중생 구제의 실천에 앞장섰다. 또한 일제강점기 중앙불교계의 총무원 학무부장, 교무원 교학부장을 역임하는 등 불교계의 핵심으로 활동하였다. 1910년에 만해 한용운, 석전 박한영 등과 함께 임제종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는 이회광이 원종(圓宗)을 세워 조선 불교를 일본의 종단에 통합하려는 시도에 맞선 민족운동이었다. 1946년에는 백양사를 본사로 하는 고불총림(古佛叢林)을 결성, 선교 겸수의 종합도량을 설립하여 여법한 수행 가풍을 확립하였다. 이는 이후 불교정화운동의 실질적인 효시가 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만암은 후학의 양성을 위해 많은 노력을 쏟았다. 1910년에는 백양사에 근대적 학교인 광성의숙(廣成義塾)을 설립하여 운영하였고, 1928년~1932년에는 중앙불교전문학교(동국대학교 전신)의 1대, 2대 교장을 맡았다. 1947년에는 전남 광주에 정광중고등학교를 세워 인재 양성에 주력하였다. 1948년에는 조선불교 교정(敎正)으로, 1952년에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대 종정으로 추대되었다. 이때 출가승 본위의 불교정화운동을 추진하여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기여하였다. 1957년 1월 세수 81세, 법랍 71년으로 입적하였다.
· 집필자 : 김종진

관련자료

  • 만암의 불교정화관
    학술논문 김광식 | 선문화연구 | 14 | 서울: 한국불교선리연구원 | 2013 상세정보
  • 만암의 선농일치 사상
    학술논문 김광식 | 선학 | 30 | 서울: 한국선학회 | 2011 상세정보
  • 근대 불교계와 만암 송종헌의 교육 활동
    학술논문 한동민 | 대각사상 | 33 | 서울: 대각사상연구원 | 2020 상세정보
  • 더보기  +

지리정보

    • 내용
  • 위로
  • 불국토
    문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