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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공 월면

한글만공 월면
한자滿空月面
유형인물
키워드경허 성우, 금오, 일엽, 선학원
시대근현대
출생1871년
입적1946년
만공(滿空)
탑 소재지백양사
비 소재지백양사
일제의 불교 정책에 맞서며, 선불교를 크게 중흥한 승려
경허 선사의 제자로 선불교를 크게 중흥시키면서 선풍 진작을 위하여 적극 노력한 고승이다. 전라북도 정읍 출신으로 속성은 송씨(宋氏), 아버지는 신통(神通), 어머니는 김씨(金氏)이다. 속명은 도암(道巖), 법호는 만공(滿空), 법명은 월면(月面)이다. 금산사에서 불상을 처음 보고 크게 감동을 받은 것이 계기가 되어 출가를 결심하고, 1884년 공주 동학사(東鶴寺)에 들어가 진암(眞巖) 문하에서 행자 생활을 하였다. 그해 10월 경허(鏡虛)를 따라 서산 천장사(天藏寺)에서 태허(泰虛)를 은사로, 경허를 계사(戒師)로 사미계를 받고 법명을 월면(月面)이라 하였다. 1895년 아산 봉곡사(鳳谷寺)에서 새벽에 범종을 치며 『화엄경』의 ‘응관법계성 일체유심조(應觀法界性 一切唯心造)’, 즉 ‘마땅히 법계의 성품, 모든 것이 마음으로 된 줄을 보라’는 의미의 게송을 읊다가 홀연히 깨달았다. 1910년 경허 선사와 헤어져 양산 통도사의 백운암(白雲庵)에 들러 며칠 머무르는 동안, 새벽에 범종을 치는 소리에 문득 재차 크게 깨달았다. 그리하여 곧 천장사로 돌아와 법열을 즐기는 도중, 1904년 함북 갑산으로 가던 길에 천장사에 들른 경허 선사로부터 깨달음을 인가받고 ‘만공(滿空)’이란 법호와 함께 전법게를 받았다. 1905년부터 덕숭산 금선대(金仙臺)를 짓고 보림하는 동안 납자들의 수행을 도왔고, 1931년 유점사 금강선원 조실을 맡았으며, 1937년을 전후하여 잠시 마곡사의 주지를 맡았던 때를 제외한 대부분의 생애를 덕숭산에 머무르며 선을 지도하였다. 한편 수덕사(修德寺)·정혜사(定慧寺)·견성암(見性庵)과 서산 안면도의 간월암(看月庵) 등을 중창하였다. 1920년대 초에는 선풍 진작의 일환으로 선학원(禪學院) 설립 운동을 전개하였다. 선학원은 만공을 포함하여 백용성, 오성월, 김석두 등 뜻있는 선사들이 사찰령의 폐해를 극복하고 불조(佛祖)의 정맥을 계승해야 한다는 자각으로 1921년 11월 안국동에 설립한 선승들의 모임이었다. 그는 이후 선학원의 주요 직책을 맡으면서 조선불교의 전통이 이어져 나갈 수 있도록 많이 노력했다. 1941년, 선학원에서 개최한 전국고승법회에서 계율을 올바로 지키고 선(禪)을 진작시켜 한국불교의 바른 맥을 이어가자고 설법하였다. 말년에 덕숭산 상봉 가까이에 전월사(轉月舍)라는 초암을 짓고 생활하다가 1946년 입적하였다. 세수 75세, 법랍 62년이다. 사리탑은 수덕사 금선대에 모셔져 있다. 제자로는 보월(寶月), 용음(龍吟), 고봉(高峰), 서경(西耕), 혜암(惠庵), 전강(田岡), 금오(金烏), 춘성(春城) 등과 비구니 법희(法喜), 만성(萬性), 일엽(一葉) 등이 있다.
· 집필자 : 신행문화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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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불교인물사상사
    도서 불교신문사 | 서울: 민족사 | 1991 상세정보
  • 근대불교개혁운동의 관점에서 본 경허·만공의 행적
    학술논문 조을규 | 불교학연구 | 30 | 서울: 불교학연구회 | 2011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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