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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 혜일

한글동산 혜일
한자東山慧日
유형인물
키워드용성 진종, 한암 중원, 서상계맥
시대근현대
출생1890년
입적1965년
동산(東山)
탑소재지수덕사
선풍 진작과 불교 정화에 힘쓴 인물
불교의 선풍 진작에 노력하면서 밖으로는 불교의 순수성과 자주성을 수호하기 위해 정화불사를 성취시켜 현대불교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승려다. 충북 단양군 단양읍 출신으로 아버지는 하성창(河性昌), 어머니는 정경운(鄭敬雲)이다. 속명은 동규(東奎)이다. 법호는 동산(東山), 법명은 혜일(慧日)이다. 7세 때 서당에서 유교 서적인 사서삼경과 역사서 등을 7년 동안 배우고, 15세에 신교육기관인 익명보통학교(益明普通學校)에 입학하였는데 당시 담임은 주시경(周時經) 선생이었다. 이후 서울의 중동중학교(中東中學校)를 졸업하고 의학전문학교를 다녔다. 당시 외삼촌인 오세창(吳世昌, 1864~1953)이 용성(龍城) 화상과 절친한 사이라서 자주 교류하고 있었는데, 동산은 두 분의 심부름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용성 화상과 교분이 두터워졌다. 어느 날 용성의 “인간의 병은 의술로 치료한다지만 마음의 병은 무엇으로 다스리겠느냐?”라는 물음에 충격을 받았다. 동산은 ‘불교는 인간의 마음에 대한 병을 고치는 종교다’라는 것을 깨닫고 불교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1912년 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범어사로 출가하여 용성 진종(龍城震鍾, 1864~1940)을 은사로, 성월(性月, 1865~1943)을 계사로 수계하였다. 이후 1913년 봄에 범어사에서 『능엄경』을 배우고, 10월 보름 결제일(結制日)부터 백양사 운문선원에서 용성에게 『전등록』, 『염송』, 『범망경』, 『사분율』 등을 배웠다. 또한 1914년 한암 중원(漢巖重遠, 1876~1951)이 머물던 평안도 맹산의 우두암(牛頭庵)을 찾아가 2년간 교학과 선을 배웠다. 그가 배운 교학 교재는 『능엄경』, 『기신론』, 『금강경』, 『원각경』이었다. 1916년에는 출가 본사인 범어사로 돌아와서 영명(永明) 대강백에게 대교과정을 2년간 수학하였다. 1924년 봄부터 3년간은 직지사에서 3년 결사를 하였다. 1929년(40세)에는 범어사의 조실이 되어 참선 납자들을 지도하였고, 1937년 하안거 때에는 도리사 조실, 이듬해에는 은해사 선원의 조실을 하는 등 여러 선원에서 납자들을 지도하였다. 한편 동산 대종사는 1936년 47세 때 용성으로부터 지리산 칠불선원의 서상계맥(瑞相戒脈)을 전수받고, 다시 1943년 오랫동안 범어사에 전래되어 오던 중국 법원사(法源寺)의 계법(戒法)을 영명(永明)으로부터 전수받았다. 그해부터 금강계단의 전계화상(傳戒和尙)으로 계법을 전수하기 시작하였다. 1941년 3월 선학원에서 개최한 유교법회(遺敎法會)의 설립 행사에서 조사(祖師)의 종풍을 다시 일으켜 일제의 강압으로 잘못된 불교를 바로잡아 세울 것을 역설하면서 불교 정화의 기치를 들었다. 한편, 1953년 5월 왜색 사판승들의 행패가 날로 심해지자 도저히 그대로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전국에 격문을 보냈으며, 1954년 11월 불교정화중앙종회에서 종정에 추대되었다. 1955년 8월 정화운동이 완수되자, 모든 공직을 내놓고 다시 범어사로 돌아갔으며, 1958년 8월 다시 종정에 추대되었다가 1965년 세수 76세, 법랍 53년으로 입적하였다.
· 집필자 : 신행문화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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