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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 태전

한글금오 태전
한자金烏太田
유형인물
키워드만공 월면, 전국비구승대회, 교단정화
시대근현대
출생1896년
입적1968년
금오(金烏)
계행과 두타행을 실천하면서 종풍(宗風)을 선양한 선사
철저한 계행과 두타행을 실천하며 선풍을 진작시켰을 뿐만 아니라 교단 정화에도 앞장선 승려이다. 1896년 전남 강진 출신으로 아버지는 동래 정씨(鄭氏) 용보(鄭用甫)이며, 어머니는 조씨(趙氏)이다. 이름은 태선(太先)이다. 호는 금오(金烏), 법명은 태전(太田)이다. 1912년 15세 때 금강산 마하연사에서 출가하여 도암 긍현(道庵亘玄) 선사의 제자가 되었다. 1921년 일봉(一峰) 율사를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하고, 1925년 덕숭산 정혜사(定慧寺)에서 만공 선사(滿空禪師)로부터 전법게(傳法偈)를 받았다. 31세(1926)에 정혜사를 나와 하심(下心)을 기르기 위해 2년 동안 두타행을 하면서 거지들과 함께 생활하기도 하였다. 1935년에는 김천 직지사의 조실로 있으면서 후학을 지도하였고, 이후 안변 석왕사, 도봉산 망월사, 지리산 칠불사, 서울 선학원 등에서 후학 양성에 힘을 기울이기도 하였다. 그는 항상 제자들에게 “불법을 얻기 위해서는 목숨마저도 아깝지 않다는 정신으로 임해야 한다.”라면서 투철한 수행 자세를 강조하였는데, 이러한 출가자의 모범적 자세가 사람들의 귀감이 되었다. 한편 조선총독부에서 강요하는 창씨개명과 대처승의 양성에 응하지 않고, 깊은 산속에 머물면서 참선수행에 힘썼다. 그는 계율을 지키고 상당설법과 격외의 법어 등을 통하여 승속이 존경하는 선지식으로서 이름을 드날렸을 뿐만 아니라, 선풍의 진작 및 중생의 교화에도 힘썼다. 이처럼 승단의 가풍을 바로잡고 삼보정재를 수호하며 사찰을 수도도량으로 만들어 가는 데 앞장섰다. 1954년에는 전국비구승대회에서 교단정화추진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되어 본격적으로 교단정화운동에 나서기도 하였다. 1957년에는 구례 화엄사 주지, 그리고 1958년에는 조계종 총무원장을 역임하였고, 1967년에는 법주사를 중창하는 등 선풍을 진작시키면서도 사판소임에도 탁월하였다. 금오는 1968년 10월 8일 “무념으로써 종을 삼는다.(無念爲宗)”라는 말을 남기고 세수 73세, 법랍 57년으로 입적하였는데, 문손들이 1975년 법주사에 부도와 비를 세웠다. 제자로는 월산(月山), 범행(梵行), 월남(月南), 탄성(呑星), 혜정(慧淨), 월탄(月誕) 등 50여 명이 있으며, 저서로는 『금오집』이 있다. 선사는 한국불교에 많은 발자취를 남겼다. “참선하지 않는 납자는 승려가 될 자격이 없다.”라고 할 정도로 선 수행에 몰입하였다.
· 집필자 : 신행문화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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