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금하 광덕 |
|---|---|
| 한자 | 金河光德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동산, 청담, 성철, 대각회 |
| 시대 | 근현대 |
| 출생 | 1927년 |
| 입적 | 1999년 |
| 호 | 금하(金河) |
| 탑소재지 | 통도사 |
한국불교 전법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실천한 고승
한국불교가 나아갈 방향을 대중불교와 도심불교로 구분하여 대중 포교의 새로운 모범을 개척한 고승이다.
1927년 경기도 화성군 오산읍의 유교적 가풍을 지닌 집안에서 아버지 고준학(高準學)과 어머니 김동낭(金東娘) 사이에 2남 3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속명은 병완(秉完)이다. 법호는 금하(金河), 법명은 광덕(光德)이다.
일제 강점기 가난한 소농의 아들로 태어난 광덕은 가족들의 잇따른 죽음과 자신의 병고로 힘든 유년 시절을 보냈다. 1950년 요양을 위해 범어사로 들어가면서 은사인 동산(東山)의 지도 아래 불교와 인연을 맺게 되면서 선방에 입실하여 범어사 금어선원, 함안 장춘사, 죽도, 삼천포 등 제방 선원에서 수행 정진하였다. 이 무렵 1953년부터 『금강경』 강의와 독송으로 구국운동을 펴고 있던 소천과 인연을 맺게 된다. 1956년 대각사 주지 소천의 대각사상 법회 개최 이후 총재 청담, 명예총재 성철과 함께 ‘대각회’를 창립하였고, 초대 회장을 역임하였다. 대각회는 『금강경』을 기본으로 한 신행단체로 서울 대각사(大覺寺)를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다.
1959년 범어사에서 현대선학연구회를 결성하고, 『벽암록』 등 여러 선종 관련 서적에 현토하였으며, 1960년에 10년간 자원했던 행자생활을 마치고 동산에게 비구계를 수계하였다. 그해 역경원을 설립하여 『벽암록』, 『선문촬요』, 『선문염송』, 『선관책진』, 『선문단련설』 등을 현토 출판하였다.
1962년 조계종 서무국장으로 종단의 법령을 제정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하였으며, 1965년에는 봉은사 주지로 취임하여 엄격한 수행과 청년불자 교육을 시행하는 이른바 ‘봉은사 결사’를 주도하기도 하였다. 이 과정에서 대학생불교연합회 특별 수도원을 설립하여 대학생들을 지도하였다. 또한 법회를 개설하여 정법을 설파하고, 대학생들을 위한 신행조직을 꾸렸다.
1971년에는 총무원장 직무대행을 맡아 종단을 안정시키는 데 힘을 쓰면서 언제나 불교가 젊어져야 한다는 소신 아래 젊은 불자, 특히 대학생 불자들에게 많은 관심을 갖고 직접 지도에 나서기도 했다. 1974년에는 서울 종로의 대각사에서 ‘불광회’를 창립하고 월간 『불광』을 창간하였다. 1982년에는 서울 잠실에 불광사(佛光寺)를 창건하여 도심포교의 새로운 기풍을 마련하였다. 또한 승가대학의 필요성을 절감해 중앙승가대학 설립에 노력을 아끼지 않았고, 동국학원 이사를 맡아 학원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
광덕은 전법과 포교에 전념하다가 1999년 2월 27일 범어사에서 세수 73세, 법랍 50년으로 입적하였다. 범어사 입구 광장에 세워진 ‘조계종사금하광덕대선사지비’는 일타 선사가 비문을 지었는데, 비문 말미에 광덕 선사가 평소 애송하던 게송이 새겨져 있다.
· 집필자 : 신행문화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