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경허 성우 |
|---|---|
| 한자 | 鏡虛惺牛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만공 월면, 혜월 혜명, 한암 중원, 경허집 |
| 시대 | 조선 후기 |
| 출생 | 1846년 |
| 입적 | 1912년 |
| 호 | 경허(鏡虛) |
| 비소재지 | 범어사 |
근대 한국 선불교를 크게 부흥시킨 강백이자 대선사
근대 한국 선불교의 중흥조로서 중생교화와 선불교 중흥에 크게 활약한 선사이다.
전주 자동리(子東里) 출신으로 본관은 여산(廬山) 송씨(宋氏)이고, 아버지는 두옥(斗玉), 어머니는 밀양 박씨(朴氏)이다. 속명은 동욱(東旭)이다. 법호는 경허(鏡虛), 법명은 성우(惺牛)이다.
부친과 일찍 이별한 후 9세 때 어머니를 따라 관악산 청계사(淸溪寺)로 찾아가 계허(桂虛)에게 출가한다. 경허는 허드렛일을 하다가 14세가 되던 해, 우연히 청계사로 병 치료차 왔던 박(朴)처사를 만나 글을 배우면서 재능을 인정받는다. 이에 스승 계허는 계룡산 동학사에 있는 만화 관준(萬化寬俊, 1850~1919) 강백에게 편지를 보내 경허를 맡아 달라고 부탁한다. 이후로 만화의 밑에서 9년 동안 불교 경론뿐만 아니라 유가, 노장, 제자백가 등을 두루 섭렵한다.
곧 만화 강백의 뒤를 이어 23세 때 동학사 강백으로 추대되니 그 명망이 전국에 널리 알려진다. 31세가 되던 해 옛 스승이던 계허를 찾아 한양으로 가다가 천안 인근에서 폭풍우와 전염병으로 인한 생사의 절박함을 몸소 보고 겪은 뒤 발심하게 된다. 이에 동학사로 돌아와 학인을 해산하고 강원을 철폐하고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송곳으로 다리를 찌르고 날카로운 칼을 턱에 괴어 가면서 용맹정진을 시작하여 그로부터 석 달째 되던 날 ‘소가 되어도 고삐 뚫을 구멍이 없다.’라는 말을 듣고 활연히 깨달음을 얻는다. 1879년 11월 15일에 대도(大道)를 성취한 경허는 이제 무사인(無事人)이 되어 동학사 조실방(祖室房)에서 겨울 동안 시간을 보내다가 1880년 봄에 호서 연암사 천장암(天藏庵)으로 옮겨 보림장양에 들어가니 이듬해 6월 활연대오하여 오도가(悟道歌)를 불렀다.
경허는 동학사(東鶴寺)에서 천장암으로 보림처를 옮긴 뒤 5년여 동안 주석하면서 수월과 혜월 그리고 만공을 지도하고, 찾아오는 중생들을 제법하였으며 이때 유생들과도 교류를 갖는다.
대사는 이후에도 계속 천장암, 개심사, 문수사, 부석사, 수덕사 등 호서 지방 사찰에서 선풍을 크게 일으킨다. 1896년 54세 때 용악 혜견(龍嶽慧堅)의 발원 기도로 내탕금과 성금을 모아 해인사 고려대장경 4부를 인경하고 해인사에 수선사를 창설하고 법주로서 추대된다. 뿐만 아니라 금강산 마하연, 양산 통도사, 부산 범어사, 순천 송광사, 구례 화엄사, 합천 해인사 등에서 후학을 지도하였다. 1900년 1월 55세 때 조계산 송광사 점안식에 증사로 초빙받아 머물렀으며, 송광사를 비롯한 화엄사, 천은사, 백장사, 실상사 등 호남 일대에 선원을 창설하고 선풍을 진작한다.
1904년 1월 해인사 인경불사(印經佛事)를 매듭짓고 2월 천장암에 도착하여 만공에게 전법하고 뒷날의 불법을 부촉한 후 북쪽으로 향했다. 봄에 월정사에서 3개월간 『화엄경』 법회를 하고 여름에 금강산을 유람하며 주옥같은 시를 남겼다. 그 후 갑산(甲山), 강계(江界) 등지에서 머리를 기르고 유관(儒冠)을 쓴 모습으로 살았으며, 박난주(朴蘭州)라고 개명한다. 서당의 훈장이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1912년 4월 25일 새벽에 임종게를 남긴 뒤 입적하니 나이 64세, 법랍 56년이다.
뛰어난 제자로는 만공 월면(滿空月面), 혜월 혜명(慧月慧明), 수월 음관(水月音觀), 한암 중원(漢岩重遠) 등이 있다. 저서에는 『경허집(鏡虛集)』이 있다.
· 집필자 : 신행문화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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