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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봉 정석

한글경봉 정석
한자鏡峰靖錫
유형인물
키워드구하 천보, 한암 중원, 용성 진종
시대근현대
출생1892년
입적1982년
경봉(鏡峰)
시호원광(圓光)
통도사 불교전문강원 원장과 통도사 주지를 역임한 승려
통도사 불교전문강원 원장과 통도사 주지를 역임하며 선승들을 지도한 고승이다. 경남 밀양 태생으로 속성은 광주 김씨(金氏)이고, 아버지는 영규(榮奎)이며, 어머니는 안동 권씨(權氏)이다. 속명은 용국(鏞國), 법호는 경봉(鏡峰), 법명은 정석(靖錫)이며, 시호는 원광(圓光)이다. 7세 때 밀양에 있는 한학자 강달수(姜達壽)에게 사서삼경을 배웠으며, 15세 되던 해 모친상을 겪고 인생의 무상함을 깨닫게 된다. 이듬해에 양산 통도사의 성해(聖海) 선사를 은사로 출가한다. 1908년 통도사에서 설립한 명신학교(明新學校)에 입학하였고, 청호(淸湖)를 계사로 사미계를 받았다. 1912년에 해담(海曇)에게 비구계와 보살계를 받은 뒤 통도사 불교전문강원에 들어가 공부를 하게 된다. 강원 졸업 후에 어느 날 경전을 보다가 “종일토록 남의 보배를 세어도 본래 반 푼어치의 이익도 없다.”라는 구절을 보고 커다란 충격을 받게 된다. 이에 참선 공부를 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내원사(內院寺)의 혜월(慧月) 선사를 찾아 법을 물었지만, 마음속의 의문을 해결하지 못하였다. 이에 다시 해인사에 있는 퇴설당(堆雪堂)으로 가서 정진하고, 금강산 마하연(摩訶衍)과 석왕사(釋王寺) 등 명성 있는 선원을 찾아다녔다. 당시 직지사에서 만난 만봉(萬峰)과의 선론(禪論)에 힘입어 ‘자기를 운전하는 밝고 신령스런 주인’을 찾을 것을 결심하고, 통도사 극락암으로 자리를 옮겨 3개월 동안 장좌불와(長坐不臥)하면서 정진을 계속하였다. 이후에 방한암(方漢巖), 김제산(金霽山), 백용성(白龍城) 등과 교류하면서 친분을 두텁게 하였다. 1932년 통도사 불교전문강원 원장에 취임한 뒤부터 50여 년 동안 한결같이 중생교화의 선구적 소임을 다하였으며, 1935년 통도사 주지, 1941년 조선불교중앙선리참구원(朝鮮佛敎中央禪理參究院, 지금의 선학원) 이사장을 거쳐 1949년 4월에 다시 통도사 주지를 맡게 된다. 1953년에는 극락호국선원(極樂護國禪院) 조실(祖室)에 추대되어 입적하던 날까지 이곳에서 설법과 선문답으로 법을 구하러 찾아오는 불자들을 지도하였고, 동화사(桐華寺)·내원사(內院寺) 등 여러 선원의 조실도 겸임하여 후학들을 지도하였다. 언제나 온화함과 자상함을 잃지 않았고, 청렴하고 검소한 생활을 하였으며, 꾸밈없는 활달한 경지에서 소요자재하였으므로 항상 열린 문호에는 구도자들이 가득하였다. 경봉은 매일의 중요한 일을 기록한 일기를 남겼는데, 이는 당시 사회상과 한국불교의 흐름을 볼 수 있는 자료로, 근세 한국불교사의 소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1982년 세수 91세, 법랍 75년으로 입적하였다. 탑과 비는 1984년 통도사 일주문 밖에 세워졌다. 저서로는 『법해(法海)』, 『속법해(續法海)』와 시조집인 『원광한화(圓光閒話)』, 유묵집인 『선문묵일점(禪門墨一點)』, 서간집인 『화중연화소식(火中蓮花消息)』, 설법과 선문답을 기록한 『삼소굴일지』 등이 있다.
· 집필자 : 신행문화팀

관련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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