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혜철 |
|---|---|
| 한자 | 惠哲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구산선문, 동리산문, 태안사, 도선 |
| 시대 | 통일신라 |
| 출생 | 785년(원성왕 1) |
| 입적 | 861년(경문왕 1) |
| 호 | 혜철(慧徹) |
| 시호 | 적인(寂忍) |
통일신라 시대 중국 구법승으로 동리산문(桐裏山門)의 개조
통일신라 시대에 중국에 가서 서당 지장에게 선법(禪法)을 배우고 돌아와 구산선문(九山禪門) 중 하나인 동리산문(桐裏山門)을 열었다.
경상도 경주 출신으로 속성은 박씨(朴氏)이다. 자는 체공(體空) 또는 청보(淸寶)이고, 호는 혜철(慧徹)이며, 법명은 혜철(惠哲)이다. 동리 화상(桐裏和尙)이라고도 한다.
799년(소성왕 1) 15세에 출가하여 부석사에서 『화엄경』을 배웠고, 6년 후인 806년(애장왕 7) 구족계를 받았다. 814년(헌덕왕 6)에는 당나라에 가서 서당 지장(西堂智藏)에게 선법을 배웠다. 지장이 입적한 뒤에는 사방으로 유행하다가 서주의 부사사(浮沙寺)에서 3년 동안 대장경을 공부하고, 839년(문성왕 1) 신라로 귀국하였다.
당나라에서 돌아온 뒤에 무주의 쌍봉사에서 여름 안거를 마치고, 곡성 동리산 태안사(太安寺)에서 개당(開堂)하여 선풍을 일으켰다. 이 사찰을 창건할 무렵 온 고을에 모기와 등에가 들끓고 있었는데, 국사가 신통력으로 쫓아내자 산 오른쪽 고갯마루로 넘어갔다. 그 뒤로는 단 한 마리의 모기도 없게 되었으므로 그 고개의 이름을 축맹치(逐虻峙)라고 하였다.
대사는 861년(경문왕 1) 세수 77세, 법랍 62년으로 입적하였고, 경문왕(景文王)이 ‘적인(寂忍)’이라는 시호를 추증하였다. 872년에 탑을 세웠으며, 탑명은 조륜청정(照輪淸淨)이다. 전라남도 곡성군 죽곡면의 태안사에 있는 ‘태안사적인선사탑비(泰安寺寂忍禪師塔碑)’가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대사의 제자 중에 선각국사(先覺國師) 도선(道詵, 827~898)이 있다. 도선의 비문에는 “신라 문성왕(文聖王) 9년(847), 도선의 나이 20세 되는 해에 혜철 대사가 서당 선사에게서 밀인(密印)을 전해 받고, 귀국하여 동리산에서 법석을 열고 법을 설하자, 영원한 유익함을 얻으려는 사람들이 매우 많이 귀의하였다. 이에 도선이 선문(禪門)에 귀의하여 제자가 되기를 청하여 나이 23세에 혜철 대사로부터 구족계를 받았다.”라고 하였다.
· 집필자 : 신행문화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