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포대화상 |
|---|---|
| 한자 | 布袋和尙 |
| 유형 | 인물 |
| 시대 | 후량(後梁) |
| 출생 | 미상 |
| 입적 | 916년 |
| 호 | 장정자(長汀子) |
| 시호 | 정응대사(定應大師) |
| 탑소재지 | 가평 현등사 |
| 비소재지 | 문경 봉암사 |
중국 후량(後梁) 때 고승으로 포대를 짊어지고 다닌 것으로 알려진 인물
포대(布袋) 화상은 원래 정응 대사(定應大師)라고 하는데 후량(後梁)의 고승으로 알려져 있지만 자세한 생몰년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에 대한 기록에 대해서는, 『지월록(指月錄)』, 『불조강목(佛祖綱目)』, 『불조역대통재(佛祖歷代通載)』 등 몇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명주(明州) 봉화현(奉化縣)에 있던 화상에 대한 조상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스스로 자신을 ‘계차(契此)’라고 하였다. 생김새가 비대하고 이마에 주름이 잡히고, 배가 겹쳐지고, 말이 일관되지 않았으며, 아무 곳에서나 자고 누웠다. 항상 지팡이 끝에 자루 하나를 매달고 온갖 살림살이를 모두 그 안에다 넣었다. 저잣거리나 마을에 들어갔다가 물건을 보면 달라고 하는데, 단술이나 초나 생선이나 김치 따위를 얻으면 조금 떼어서 입에다 넣고, 나머지는 주머니 속에다 넣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포대 화상’이라고 불렀다.
그는 눈밭에 누워도 몸이 눈에 젖지 않으니, 사람들이 이 때문에 신기하게 여겼다. 혹 사람들에게 구걸하다가도 돈을 주면 돌려주었고, 남에게 길흉을 예언해 주면 틀리지 않았다. 하늘에서 비가 오려고 하면 젖은 짚신을 신고서 길바닥을 달리고, 심한 가뭄을 만나면 굽 높은 나막신을 신고 시장의 다리 위에서 무릎을 세우고 자니,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이것으로 날씨를 짐작했다고 한다.
화상이 양(梁) 916년(정명 2) 3월에 입적할 때, 악림사(嶽林寺) 동쪽 복도 밑의 반석 위에 단정히 앉아서 읊었다는 게송이 전해지고 있다.
彌勒眞彌勒 미륵은 진짜 미륵인데
分身千百億 몸을 천백억으로 나누어 보이네
時時示時人 때때로 당시 사람들에게 보이지만
時人自不識 사람들은 알아보지 못하네.
게송을 마치고는 편안히 앉아서 떠났는데, 그 뒤에 다른 고을 사람들은 여전히 대사가 베자루를 메고 다니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지금도 중국 저장성 항저우에 있는 영은사 앞 비래봉에 포대 화상이 조성되어 있는데 이 불상은 남송 시대에 조성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각 사찰의 입구나 법당 가까운 곳 등에 모시고 복을 기원하는 일이 많다.
· 집필자 : 신행문화팀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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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베풀라(施我施我)’라고 한 것은, 바로 포대(布袋)의 청광(淸狂)이 아니겠습니까. ‘너에게 돌아간다(反而反而)’라고 한 것은, 또한 증씨(曾氏)의 격어(格語)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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