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진표 |
|---|---|
| 한자 | 眞表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금산사, 율사, 점찰법회 |
| 시대 | 통일신라 |
| 출생 | 733년(성덕왕 32) |
| 입적 | 미상 |
| 탑소재지 | 유점사, 안심사 |
| 비소재지 | 표훈사, 보현사, 대흥사, 밀양 표충사 |
신라 후기 금산사를 창건한 율사(律師)
신라 후기 승려로 효성왕과 경덕왕 때 활동한 대표적 율사(律師)이며, 금산사의 창건주다.
전라도 만경(萬頃) 출신으로 속성은 정씨(井氏)이고, 아버지 이름은 진내말(眞乃末)이며 어머니는 길보낭(吉寶娘)이다. 12세 때 금산사 순제(順濟, 혹은 숭제(崇濟)) 법사의 법회에 참석하였다가 출가한 이후, 순제의 가르침에 따라 명산을 방문하며 수행하였다. 몸을 잊고 참회하는 망신참법(亡身懺法)을 행한 진표는 지장보살로부터 정계(淨戒)를 받았지만 수행을 멈추지 않고 계속하였다. 마침내 미륵보살의 현신으로부터 『점찰선악업보경(占察善惡業報經)』 2권과 189개의 간자(簡子)를 받고 하산하였다.
752년에는 아슬라주(阿瑟羅州)에 이르러 물속에 들어가 물고기와 자라에게 계(戒)를 주었는데, 이 이야기를 들은 경덕왕이 그를 궁중으로 청하여 보살계를 받았다. 후궁들과 외척들도 모두 계를 받고 명주 500단과 황금 50냥을 시주하였고, 이것으로 여러 곳에 불사를 일으켰다.
진표는 미륵보살의 수기를 받은 후 766년(혜공왕 2)에 금산사를 중창하였는데, 16자 높이의 미륵불상을 조성하여 미륵전에 주불로 봉안하였다. 이후 금산사에 살면서 매년 계단(戒壇)을 열고 법을 베풀었다.
대중 교화에도 힘썼는데, 특히 점찰법(占察法)을 행한 점찰법회를 자주 열었다. ‘점찰법’이란 『점찰선악업보경』에 의거하여 나무로 깎아 만든 목륜(木輪) 간자를 굴려서 나타난 모양으로 점을 치는 것이다. 점찰법으로 전생에 지은 죄를 알고 이를 참회하고자 하였다. 또한 미륵보살로부터 받은 189개의 간자로 점찰법을 시행하였으며, 이를 통한 참회를 수행법으로 제시하였다. 이러한 점찰법을 통한 수행은 대중들에게 미륵신앙을 널리 전파하는 방편이 되기도 하였다.
이후 다시 금강산에 들어가 발연수(鉢淵藪: 발연사)를 창건하여 점찰법회를 열고 7년 동안을 지냈으며, 말년에 아버지를 모시고 발연사에서 함께 도를 닦다가 절의 동쪽 큰 바위 위에 앉아 입적하였다. 제자들이 옮기려 하였지만 꼼짝도 하지 않아 그곳에 모셔 두고 공양을 올리며 분향하였다.
발연사 주지 영잠(瑩岑)이 입적한 성골(聖骨)과 열반지가 사라질까 염려되어 1197년(丁巳) 9월 직접 그 소나무 밑을 찾아가 유골을 얻어 골호에 담아 큰 바위 위 쌍소나무[雙松] 밑에 탑을 세워 유골을 봉안하고, 다시 기문(記文)을 짓고, 이자림(李子琳)이 글을 써서 1199년(신종 2)에 비를 세웠는데, ‘발연수나승율사장골탑비(鉢淵藪羅僧律師藏骨塔碑)’라고 하였다.
문하에 신약(信若), 체진(體珍), 진해(珍海), 진선(眞善), 석충(釋忠) 등 많은 제자가 있었는데, 모두 법상종(法相宗) 계통에서 일가를 이루었다.
· 집필자 : 신행문화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