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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감 혜소

한글진감 혜소
한자眞鑑慧昭
유형인물
키워드범패, 진감선사비
시대통일신라
출생774년(혜공왕 10)
입적850년(문성왕 12)
진감(眞鑑)
시호진감국사(眞鑑國師)
탑소재지발연사
비소재지발연사
신라 말에 범패를 도입하고 차나무를 들여온 승려
신라 말 승려로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범패를 도입하고, 중국에서 남종선(南宗禪)을 배워 와서 교화를 펼쳤다. 전라도 금마(金馬: 현 익산) 출신으로 속성은 최씨(崔氏)이며, 아버지는 창원(昌元)이고 어머니는 고씨(顧氏)이다. 804년(애장왕 5) 31세에 당나라에 들어가 도일(道一) 제자 창주 신감(滄州神鑑)의 제자가 되었다. 수행이 깊고 법도가 넓어 사람들은 그를 ‘동방성인’이라 하였는데, 얼굴이 검다 하여 ‘흑두타(黑頭陀)’라고도 불렸다. 810년(헌덕왕 2) 숭산 소림사에서 비구계를 받고 경전을 배웠는데,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알아 스승을 능가하였다고 한다. 이때 당나라에 유학 온 도의(道義) 선사를 알게 되었다. 821년 도의가 귀국한 뒤에도 진감은 종남산(終南山) 높은 봉우리에 들어가 소나무 열매를 먹어 가며 3년간 선정과 지혜를 닦았다. 그 후 3년 동안 짚신을 삼아 널리 보시하다가 57세(830)에 귀국하자 흥덕왕이 매우 기뻐하였다. 대사는 흥덕왕의 귀의를 받고 상주의 장백사(長栢寺)에서 교화 활동을 펼쳤다. 이후 지리산 현 국사암(國師菴) 터에 머물며 선(禪)을 전파하면서 마땅한 가람터를 찾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호랑이 몇 마리가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처럼 앞길을 인도하여 위험한 곳을 피해 평탄한 곳으로 가니, 이곳이 바로 삼법(三法) 화상이 남긴 절터였다. 이 터에 절을 짓고 대나무통으로 물을 끌어와 집 둘레 사방에 물을 대어 옥천사(玉泉寺)라 명명하였다. 그곳이 곧 지금의 쌍계사이다. 대사가 이곳 옥천사에서 최초로 불교음악인 범패를 도입하여 사회의 여러 계급에까지 널리 보급하자 이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또한 중국에서 차나무를 들여와 처음으로 지리산 화개 골짜기 일대에 차나무를 심기도 하였다. 850년(문성왕 12) 세수 77세, 법랍 41년으로 입적하였다. 헌강왕(憲康王)이 시호를 추증하여 ‘진감국사(眞鑑國師)’라고 하였고, 탑호를 ‘대공영탑(大空靈塔)’이라 하였다. 한편 행적을 전각(篆刻)하게 하여 영원히 기릴 수 있게 하고, 쌍계사(雙溪寺)라는 사찰의 편액을 내려 주었다. 최치원이 비문을 지은 진감선사비(眞鑑禪師碑)가 하동 쌍계사 법당 앞에 있다.
· 집필자 : 신행문화팀

관련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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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감국사 진영
    문화재청 누리집 상세정보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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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쌍계사 진감선사대공탑비
    문화재청·불교문화재연구소(2009), 『한국의 사찰 문화재 전국사찰문화재일제조사 경상남도1』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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