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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관

한글체관
한자諦觀
유형인물
키워드천태사교의, 천태종, 의천
시대고려 전기
출생미상
입적970년(광종 21)
탑소재지순천 송광사
비소재지강진 월남사
고려 전기에 『천태사교의』를 저술한 승려
고려 전기 광종(光宗) 때의 고승으로, 우리나라에 있던 천태종 경론과 기타 불교 전적을 왕명으로 중국에 전하고, 중국에 있으면서 『천태사교의(天台四敎儀)』를 저술하였다. 『불조통기(佛祖統紀)』에 체관이 중국에 건너가게 된 동기에 대해 일부 내용이 전한다. 오월국의 전홍숙(錢弘俶, 948~978)이 『영가집(永嘉集)』을 읽다가 ‘동제사주(同除四住)’라는 대목을 보고 그 의미를 천태덕소(天台德昭)에게 묻자, 덕소는 다시 의적에게 물어보아야 한다고 대답하였다. 이에 다시 의적을 불러서 묻자, “이것은 지자(智者) 대사의 현묘한 이치 가운데 있는 문구로, 천태종의 소의경전인 법운(法雲)의 『법화경의기(法華經義記)』, 길장(吉藏)의 『법화경의소(法華經義疏)』, 지의의 『법화경현의(法華經玄義)』 등 삼대부(三大部)가 회창법란(會昌法難)으로 모두 소실되고, 해외로 흩어져 지금 본국에는 얻어 볼 수 없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이에 오월국왕(五月國王) 전홍숙(錢弘俶)은 960년(광종 11)에 천태종에 관계되는 서적을 구하기 위하여 사절에게 서신과 50가지 보물을 주어 고려로 보냈다. 고려 광종의 사신 자격으로 중국에 건너간 체관은 천태에 관련된 경론을 전홍숙에게 전하고, 나계사(螺溪寺)에 있는 천태종 제15조 의적(義寂)을 찾아가 그의 문하에서 천태학을 공부하면서 천태학 부흥에 공헌하게 된다. 그때 체관은 그곳에 있는 동안 『천태사교의』를 지었지만, 상자에 넣어 두고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체관이 죽은 후 그가 사용하던 상자에서 밝은 빛이 보였다. 이를 이상하다고 여긴 사람들이 상자를 열어 보자, 그곳에 『천태사교의』가 들어 있었다고 한다. 저술로는 『천태사교의』 2권이 있었지만, 지금은 앞부분 한 권만 남아 있다. 그가 천태종의 서적을 중국에 전함으로써 중국의 천태종은 활성화되었지만, 한편 고려로 다시 돌아오지 못하게 되어 고려의 천태종은 맥이 끊어지게 되었다. 훗날 의천이 중국에 가서 지자 대사 탑에 서원하기를, “옛날 체관이 교관(敎觀)을 전했으나 지금 대를 이을 자가 끊어지게 되어 내가 법을 위하여 몸을 돌보지 않고 찾아와 대도를 구한다.”라고 하였고, 돌아와 고려 천태종을 다시 열었다.
· 집필자 : 신행문화팀

관련자료

  • 대각국사집
    도서 의천, 이상현 옮김 | 동국대학교출판부 | 2012 상세정보
  • 고려 체관의 도송(渡宋)에 관한 고찰
    학술논문 김영길 | 한국불교학 | 3 | 한국불교학회 | 1977 상세정보
  • 체관의 실상론과 십승관법의 이해
    학술논문 이병욱 | 보조사상 | 23 | 보조사상연구원 | 2005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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