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일연 |
|---|---|
| 한자 | 一然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삼국유사, 중편조동오위 |
| 시대 | 고려 후기 |
| 출생 | 1206년(희종 2) |
| 입적 | 1289년(충렬왕 15) |
| 호 | 목암(睦庵), 원경충조(圓徑冲照) |
| 시호 | 보각(普覺) |
고려 후기의 선승으로, 『삼국유사』를 저술한 고승
고려 후기 원(元) 침략기·간섭기의 선승으로, 『삼국유사(三國遺事)』를 저술한 고승이다. 자는 회연(晦然), 법명은 일연(一然)이고, 호는 목암(睦庵), 시호는 보각국사(普覺國師)이다.
희종 2년(1206) 경상도 장산군(章山郡: 현재 경산시)에서 태어났다. 해양(海陽: 현재 광주광역시) 무량사(無量寺)에서 공부하고, 13세 때 진전사(陳田寺)에서 출가하였다. 선불장(選佛場)에서 장원급제하고, 후에 선사(禪師) 법계를 받았다. 고종 36년(1249) 남해 정림사(定林寺) 분사대장도감(分司大藏都監)에서 대장경 조판에 참여하였고, 후에 대선사(大禪師) 법계를 받았다.
원종 2년(1261) 강화도 선월사(禪月社) 주지로 보조 지눌(普照知訥)의 법통을 계승하였고, 원종 9년(1268) 운해사(雲海寺)에서 팔만대장경판 회향 법회를 주관하였으며, 충렬왕 9년(1283)에 ‘원경충조(圓徑冲照)’라는 호와 함께 국존(國尊)에 책봉되었다. 마침내 충렬왕 15년(1289) 병이 들자 새벽에 목욕재계하고 제자들과 선문답을 나눈 뒤 금강인(金剛印)을 맺고 입적하였다.
대사는 선 사상을 중심에 둔 선사이다. 이는 대사가 출가한 진전사가 가지산문의 개창자인 도의 선사의 사찰인 점에서도 알 수 있다. 대사는 정림사에서 혜심 선사의 『선문염송』을 주석하였는데(『선문염송사원』), 이로 보아 간화선에 바탕을 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당시 간화선과 다른 조동선을 적극 수용하여 선 사상을 융합하려는 경향도 보여 주었다.(『중편조동오위』)
당시는 몽골 침략기로서, 대사는 오랜 전란에 지친 민중들에게 역사의식과 신앙심을 강조하고자 하였다. 고대 신화, 민간 설화, 불교 기사 등이 수록된 『삼국유사』는 충렬왕 3년(1277)부터 청도 운문사에서 집필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민중들에게 현세구원의 길을 열어 주기 위해서, 타력적인 관음 신앙의 공덕과 다라니 신앙을 통한 신비적 요소까지 수용하였다.
저서로 『삼국유사(三國遺事)』, 『중편조동오위(重編曺洞五位)』 『선문염송사원(禪門拈頌事苑)』 등을 남겼는데, 이중에 『삼국유사』는 고대 문학과 역사 연구에 대단히 귀중한 문헌이다.
· 집필자 : 신행문화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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