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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차돈

한글이차돈
한자異次頓
유형인물
키워드흥륜사
시대삼국시대(신라)
출생506년(지증왕 7)
입적527년(법흥왕 14)
탑 소재지인각사
신라 법흥왕 때 불교 전파를 위해 순교한 인물
신라 법흥왕 때 불교가 국가의 공인을 받는 데 순교로써 기여한 불교도다. 속성은 박씨(朴氏)이며 다른 이름으로 거차돈(居次頓)이라고도 한다. 증조부는 습보갈문왕(習寶葛文王)이고, 조부는 공한(功漢)이며, 아버지는 길승(吉升)이다. 법흥왕(法興王, 514~540)은 불교를 일으켜 왕권을 강화하고자 하였지만, 재래의 토착신앙에 젖어 있는 신하들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당시 이차돈은 국왕을 가까이에서 모시는 내사사인(內史舍人)의 직책에 있었는데, 그는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더라도 불교를 정식으로 공인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하였다. 왕은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여겼지만, “비록 죽더라도 도를 펴게 된다면 유감이 없겠다.”라는 그의 신념은 확고했다. 이에 왕은 절을 지으라는 명을 어겼다는 죄목으로 이차돈을 사형에 처하였다. 왕이 이차돈의 목을 자르자 베인 목에서 피가 나오지 않고 흰빛 젖이 하늘 높이 솟아 마치 무지개처럼 백률사(栢栗寺)에까지 뻗으므로 이 기적을 본 신하들은 아무도 반대하는 자가 없었다. 그리하여 천경림(天鏡林)의 수목을 베어내고 절을 지었으니 이것이 곧 흥륜사(興輪寺)이다. 이러한 이야기는 신라에서 불교가 공식적으로 수용되는 과정이 고구려·백제와는 달리 순탄하지 않았음을 말해 주고 있다. 순교를 계기로 법흥왕은 529년에 살생을 금지하는 명령을 내렸고, 신라 최초의 불교사찰인 흥륜사(興輪寺)를 짓기 시작해 544년에 완성하였다. 순교 후 그의 명복을 빌기 위해 자추사(刺楸寺)를 세웠다. 817년(헌덕왕 9)에는 순교 장면과 함께 사적을 새긴 6각 석당을 경주 백률사에 세웠는데,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 집필자 : 신행문화팀

용례

  • 승려인 묵호자가 고구려에서 모례의 집에 이르자 모례가 굴을 만들어 그를 머물러 있게 하여 스님을 돌보아 주었으니 때는 눌지왕 시절이었다. 법흥왕 15년에 왕이 스님의 도예(道譽)를 듣고 사신을 보내 궁 안으로 맞아들여 예로서 공경하며 불교를 흥성시키려 하였다. 근신(近臣) 이차돈(異次頓)은 그 계획을 찬성했으나, 나머지 신하들은 그를 미워하며 은밀히 일을 꾸며 그를 죽였다. 왕이 안타까워하면서 “이차돈이 과인을 찬성하여 죽음을 자초했으니 과인은 이를 통탄스럽게 여기며 이후 이같이 의론하는 자는 목을 벨 것이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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