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의천 |
|---|---|
| 한자 | 義天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천태종, 교장도감, 신편제종교장총록, 원종문류, 석원사림, 대각국사집 |
| 시대 | 고려 중기 |
| 출생 | 1055년(문종 9) |
| 입적 | 1101년(숙종 6) |
| 호 | 홍진(弘眞), 우세(祐世) |
| 시호 | 대각국사(大覺國師) |
| 비소재지 | 국립 경주박물관, 경주 흥륜사 |
고려 중기에 불교 전적을 정비하고 천태종을 개창한 천태종의 개조
고려 중기에 송(宋)으로 유학을 다녀온 뒤, 교장도감(敎藏都監)을 설치하여 불교 전적을 정비하고, 천태종을 세워 교단의 통일을 도모한 천태종의 개조이다. 속명은 후(煦), 자는 의천(義天)이고, 법명은 의천(자와 동일), 법호는 우세(祐世), 시호는 대각국사(大覺國師)이다.
대사는 1055년 고려 제11대 문종(文宗)과 이자연(李子淵)의 딸 인예왕후(仁睿王后) 사이에 4남으로 태어났다. 제12~14대 왕들이 모두 대사의 형이다. 11세(1065)에 화엄종 영통사에 있던 경덕국사(景德國師) 난원(爛圓)을 은사로 사미계(沙彌戒)를 받고 출가하였다. 그해 10월에 불일사 계단(戒壇)에서 구족계를 받았고, 13세(1067)에 승통(僧統)으로 추대되었다. 23세(1077)에는 중국 화엄종 4조 징관의 『화엄경소』를 강의할 정도로 뛰어난 학문적인 역량을 보여 주었다.
대사는 송으로 유학가서 불교학을 깊이 연구하기를 갈망하였다. 하지만 왕자의 신분이라서 왕의 허락 받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자, 몰래 유학을 떠났다. 송나라에서는 황제와 고위 관료들의 환대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화엄종, 천태종, 선종, 계율종, 법상종 등의 고승 30여 명과 교류하였다. 이중에서 이전부터 만나기를 소망하였던 화엄종의 정원(淨源) 법사와는 『화엄경』, 『능엄경』, 『원각경』, 『대승기신론』 등의 사상과 천태와 현수의 교학에 대하여 토론하였다.
선종 3년(1086) 장소(章疏) 3천여 권을 가지고 14개월 만에 귀국하였다. 귀국한 뒤에는 개경 흥왕사의 주지로 있으면서 제자들을 양성하였다. 교장도감을 설치하여 『신편제종교장총록(新編諸宗敎藏總錄)』 3권을 편찬하였는데, 이는 1,020부 4,740권 고려속장경(高麗續藏經)의 목록이다. 숙종 2년(1097)에 국청사(國淸寺)의 초대 주지가 되면서 천태종을 개창하고 천태교관(天台敎觀)을 강의하자 많은 학자들이 몰려들었다. 숙공 6년(1101) 47세로 입적하였다.
대사의 사상은 지엄, 법장, 징관 등 화엄종장들의 사상을 근간으로 하고 그 위에 천태 사상을 폭넓게 수용하여 성립되었다. 화엄의 교판론 가운데의 원교가 천태의 교판론 가운데의 원교와 대체로 같은 점을 밝혀 화엄과 천태를 회통하려고 하였고, 이것을 고려 불교계를 재편하는 데 있어서의 논리로 활용하였다. 특히, 징관이 과거에 천태, 원효, 법장의 교판이 유사함을 지적한 점을 들어서, 대사는 징관의 『화엄경소』에 따라 화엄과 천태의 교판이 같음을 강조하였다.
한편, 고려 중기 불교계는 선종과 교종의 대립이 심각한 상태였다. 이러한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서, 화엄종 승려였던 대사가 천태종을 개립하게 되었는데, 그 까닭은 천태 사상인 회삼귀일(會三歸一), 일심삼관(一心三觀)의 교의로써 선(禪)과 교(敎)의 화합을 도모하기 위해서였다. 대사가 일으킨 선교일치(禪敎一致) 운동은, 교를 중심으로 선을 흡수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아쉽게도 성공하지 못하고 훗날 지눌의 선교일치 운동을 기약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대사의 불교 신앙으로 인왕경(仁王經) 신앙을 들 수 있다. 인왕경 신앙과 관련된 법회로는 인왕반야백좌대회(仁王般若百座大會), 대장경도량(大藏經道場), 반승(飯僧) 등이 있는데, 이들은 대체로 매년 일정한 횟수로 시행되었다. 대사는 인왕도량(仁王道場)을 개설하여 국왕과 왕실의 권위를 제고하면서 동시에 불법의 중흥을 소망하였다. 이러한 점은 아마도 대사가 왕자의 신분이고 당시 불교가 호국불교적인 성격을 띠었다는 점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저술로는 『신편제종교장총록(新編諸宗敎藏總錄)』, 『원종문류(圓宗文類)』, 『석원사림(釋苑詞林)』, 『대각국사집(大覺國師集)』 등이 있다. 대사의 교장은 동아시아 불교에서 고려의 문화적 위상을 높이면서, 당시 북송, 요, 고려, 일본의 여러 종파의 교류에 큰 원동력이 되었다.
· 집필자 : 신행문화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