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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묘 요세

한글원묘 요세
한자圓妙了世
유형인물
키워드천태교관, 정혜결사, 백련결사
시대고려 후기
출생1163년(의종 17)
입적1245년(고종 32)
원묘(圓妙)
시호원묘국사(圓妙國師)
탑소재지중국 서안 흥교사(興敎寺)
고려 후기에 백련결사운동을 전개한 승려
고려 후기 승려로 천태학(天台學)을 배우고 백련결사(百蓮結社) 운동을 전개한 승려이다. 경남 합천 출신으로 속성은 서씨(徐氏)이고, 아버지는 필중(必中)이며, 어머니는 서씨(徐氏)이다. 자는 안빈(安貧)이고 법명은 요세(了世)이다. 12세에 합천 천락사(天樂寺) 균정(均定)에게 출가하고, 천태교관(天台敎觀)을 수학하였으며, 23세에 승선(僧選)에 올랐다. 1198년(신종 1) 36세에 영통산 장연사(長淵寺)에 뜻을 같이하는 10명의 도반과 머물면서 법회를 열고 후진 양성에 노력하였다. 보조 지눌(普照知訥)이 그에 대한 소문을 듣고 결사운동을 함께하자는 내용의 시(詩)를 보내자, 팔공산 거조사(居祖寺)로 가서 지눌의 정혜결사(定慧結社) 운동에 동참하였다. 지눌이 팔공산에서 순천 송광사로 옮겨 갈 때, 함께 따라나섰다가 남원 귀정사(歸正寺)의 주지 현각(玄恪)의 요청으로 그곳에 머물며 천태학을 강의하기도 하였다. 1208년(희종 4) 영암 월생산(月生山) 약사사(藥師寺)에 거주하고 있을 때, 천태종 중흥의 사명을 자각하고 천태교관을 강의하는 한편, 참회 수행에 정진하였다. 이때 대중들과 함께 매일 53부처님에게 열두 번을 예배하였는데, 이 때문에 ‘서참회(徐懺悔)’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참회 수행을 계속하고 있던 어느 날 강진에 있던 최표(崔彪), 최홍(崔弘) 등이 찾아와 옛날 만덕사(萬德寺) 터로 옮겨 사찰을 짓고 주석해 줄 것을 간청하였다. 원묘는 만덕산에 가람을 짓기 시작하여 1216년(고종 3) 80여 칸의 사찰이 완성되자 이곳을 근본도량으로 하여 백련사(白蓮社)를 조직하였다. 1221년(고종 8) 남원 태수 복장한(卜章漢)의 요청으로 남원 관내 백련사에 옮겨 지내다가 69세 되던 1232년 만덕사에서 보현도량을 설치하고 제자인 천책(天頙)에게 ‘백련결사문’을 찬술하여 공포하게 하였다. 이러한 결사운동은 보현도량의 개설을 계기로 체계가 정비되었고, 백련사라는 결사의 명칭도 이때부터 사용되었다. 여기서 법화삼매를 닦아 정토에 왕생하기를 구하게 했으며, 법화참(法華懺) 닦는 것을 행법으로 삼아 결사운동을 더욱 적극적으로 전개하였다. 이러한 백련사 결사운동은 당시에 부흥하고 있는 선(禪)을 위한 지눌의 ‘정혜결사’ 운동에 비교되는 것으로, 그가 여기서 직접 제도한 제자가 정명 천인(靜明天因) 등 38인이고, 절에 들어온 사부대중이 300여 명에 이르러 고려 후기 천태종 중흥의 큰 계기가 되었다. 1245년(고종 32) 4월에 제자인 천인에게 백련사를 맡기고, 같은 해 7월에 나이 83세, 법랍 70년으로 입적했다. 요세는 매일 선정을 닦고 경을 가르치는 여가에 『법화경』 1부를 외우고, 준제신주(准提神呪)를 1천 번, 나무아미타불을 1만 번 부르는 것을 일과로 삼았다. 고종이 ‘원묘국사(圓妙國師)’라 시호하고, 탑명을 중진(中眞)이라 하였다. 저술로 천태 지의(天台智顗)의 『법화현의(法華玄義)』, 『법화문구(法華文句)』, 『마하지관(摩訶止觀)』 등 3대부의 요점을 뽑아 묶은 『삼대부절요(三大部節要)』가 있지만, 현재 전해지고 있지는 않다.
· 집필자 : 신행문화팀

용례

관련자료

  • 원묘요세의 백련결사와 그 사상적 동기
    학술논문 고익진 | 불교학보 | 15 |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 1978 상세정보
  • 고려후기 원묘요세의 백련결사
    학술논문 채상식 | 정토학연구 | 3 | 서울: 대각회 대각출판부. | 2000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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