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원광 |
|---|---|
| 한자 | 圓光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세속오계, 점찰보, 인왕백고좌 |
| 시대 | 삼국시대(신라) |
| 출생 | 547년(진흥왕 8) |
| 입적 | 630년(진평왕 52) |
신라 중기에 세속오계를 설하고 대중교화에 힘쓴 고승
신라 중기에 중국으로 유학을 다녀온 뒤, 세속오계(世俗五戒)를 설하고 점찰법회(占察法會)를 시행하는 등 여래장 사상에 기반을 둔 다양한 대중교화 활동에 힘쓴 고승이다.
대사는 경주 출신인데, 성(姓)에 대해서는 박씨(朴氏)라는 설도 있고, 설씨(薛氏)라는 설도 있다. 25세에 진(陳)에 들어가 장엄사(莊嚴寺) 승민(僧旻)의 제자에게 성실학(成實學), 『반야경(般若經)』 등을 배웠다. 진이 멸망한 후, 수(隋)에서 담천(曇遷)에게 『섭대승론(攝大乘論)』, 『십지경론의기(十地經論義記)』 등을 배우고, 혜원(慧遠)에게 『열반경(涅槃經)』 등을 배웠다.
진평왕 22년(600)에 진평왕의 요청으로 신라로 귀국하였다. 귀산과 추항에게 화랑도의 이념이 된 세속오계(世俗五戒)를 일러주었고, 진평왕의 요청으로 수나라 원정군을 청하는 ‘걸사표(乞師表)’를 지었다(608). 또한, 황룡사에서 인왕백고좌(仁王百高座) 법회를 주관하고(613), ‘점찰보(占察寶)’를 설치하여 점찰법회를 주관하는 등 대중을 교화하며 만년을 보냈다.
대사는 중국에서 공부한 섭론학의 영향인지 불교의 여러 사상 중에서 여래장 사상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대사가 저술한 『여래장경사기』 3권과 『여래장경소』 1권 등은 모두 여래장경에 대한 주석서들인데 아쉽게도 현존하지 않는다. 누구나 청정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하는 여래장 사상에 근거를 두고, 대사는 다양한 방식으로 대중을 교화하였다.
이러한 교화활동의 대표로 점찰법회(占察法會)를 들 수 있다. 점찰법이란, 과거의 선업·악업과 현세의 길흉·화복을 점쳐서, 만약 흉사(凶事)가 나타나면 지장보살을 예참(禮懺)하여 죄를 멸하고 장애를 제거하는 것을 말한다. 대사는 토착신앙의 전통이 강한 신라의 서민들에게 부처의 가르침을 전하기 위하여 ‘점찰(占察)’이라는 방편(方便)으로 대중에게 다가섰던 것이다.
대사의 제자들 중에 원안(圓安)이라는 뛰어난 제자가 있었다. 그리고 대사의 학덕(學德)에 영향을 받아서 이후에 자장, 원측, 원효, 의상 등 많은 고승들이 신라에서 등장하였다.
· 집필자 : 신행문화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