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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지

한글순지
한자順之
유형인물
키워드위앙종, 일원상, 선교일치
시대통일신라
출생832년(흥덕왕 7)
입적896년(진성여왕 10)
시호요오(了悟)
중국으로 가서 위앙종의 선을 받아들인 통일신라의 고승
중국 위앙종(潙仰宗)의 앙산 혜적(仰山慧寂, 815~891)을 찾아가 그의 선법을 배우고 돌아와 앙산의 선풍을 크게 펼쳤다. 평안도 평양(浿江) 출신으로 평산 박씨(朴氏)이며, 어머니는 소씨(昭氏)이다. 시호는 요오(了悟), 탑호는 진원(眞原)이다. 20세 무렵에 출가를 결심하고 부모님께 허락을 받은 후, 경기도 개풍군(開豊郡)에 있는 오관산 용엄사(龍嚴寺)로 찾아가 삭발하고, 속리산 법주사(法住寺)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이후 공악산 동화사에 3~4년 정도 머물면서 진표(眞表)와 영심(永深)을 계승한 심지(心地) 화상을 만나게 되면서 신라 왕실과 인연을 맺게 된다. 27세에 깊이 있는 선(禪)을 배우기 위해 당나라 유학길을 떠나 위앙종(潙仰宗) 앙산 혜적(仰山慧寂)의 제자가 되어 법통을 이어받은 순지는 16년간의 당나라 유학 생활을 하면서 위앙종의 법을 설법할 당시 일원상(一圓相) 설법을 통하여 학인들을 가르쳤다. 유학을 마치고 874년(경문왕 14) 귀국하자 단월 원창왕후(元昌王后)와 그의 아들 위무대왕(威武大王)의 시주로 창건한 오관산 용엄사(龍嚴寺)에 머물면서 크게 증축하고, 사찰의 명칭을 서운사(瑞雲寺)로 바꾸었다. 893년(진성여왕 7)에 왕의 초빙으로 경주에 들어와 왕실에서 설법을 하고, 계림(鷄林) 인근에서 3년 동안 머물렀다. 뒤에 용암사에서 세수 65세로 입적하였다. 박인범(朴仁範)이 순지의 비명을 찬술하고 탑과 비를 오관산 서운사에 세웠다. 『조당집』에 그가 법을 설한 기록이 있는데, 「현법상표(現法相表)」와 「삼편성불편(三遍成佛篇)」 부분이다. 「현법상표」에서는 ‘원상(圓相)’을 표시하여 불법의 증득에 대한 것을 설명하고 있다. 이 가운데 진리의 상징인 ‘일원상(一圓相)’을 4대8상(四對八相)으로 구분하여 설명하고, 성불은 ‘증리성불(證理成佛)·행만성불(行滿成佛)·시현성불(示顯成佛)’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그는 선종 사상 안에 위앙선(潙仰禪)뿐만 아니라 『화엄경』과 『법화경』 사상을 융합하여 선교일치(禪敎一致)를 주장하였다.
· 집필자 : 신행문화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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