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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 태능

한글소요 태능
한자逍遙太能
유형인물
키워드운곡 충휘, 편양 언기, 소요파, 소요당집
시대조선 중기
출생1562년(명종 17)
입적1649년(인조 27)
소요(逍遙)
시호혜감선사(慧鑑禪師)
탑 소재지서운사(瑞雲寺)
비 소재지서운사(瑞雲寺)
조선 중기 휴정의 제자로 소요파의 고승
휴정의 제자 중에서 편양 언기(鞭羊彦機, 1581~1644)와 함께 선의 양대 고승으로 추앙되었으며, 수백 명의 문하가 일파를 이루어 소요파(逍遙派)라고 불렸다. 1562년(명종 17) 전라남도 담양 출신으로 속성은 오씨(吳氏)이다. 호는 소요(逍遙), 법명은 태능(太能)이다. 어머니가 신승(神僧)에게서 대승경전을 받는 태몽을 꾸고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탐욕을 싫어하고 도(道)에 대한 가르침 듣기를 즐겼다고 한다. 베풀기를 좋아하고 자비심이 많아 마을 사람들이 성동(聖童)이라고 불렀다. 13세에 백양사(白羊寺)로 가서 성진(性眞) 대사에게 출가하였다. 이후 부휴 선수(浮休善修, 1543~1615)를 찾아가 경전을 배우고 종지를 깊이 깨달았다. 부휴 문하의 수백 명 제자 가운데 운곡 충휘(雲谷冲徽, ?~1613), 송월 응상(松月應祥, 1572~1645)과 함께 법문 삼걸(三傑) 이라 불렸다. 또한 묘향산 보현사(普賢寺)로 가서 서산 휴정(西山休靜, 1520~1604)의 문하에 들어갔는데, 서산이 보자마자 훌륭한 인재라는 것을 알아보고 1581년(선조 14) 20세에 의발(衣鉢)을 전하여 전법게를 전해 주고 개당설법(開堂說法)을 하게 하였다. 소요는 사명 유정(四溟惟政, 1544~1610), 편양 언기(鞭羊彦機, 1581~1644), 정관 일선(靜觀一禪, 1533~1608) 등과 함께 ‘서산 대사의 4대 제자’로 불리었다. 31세 되던 해 임진왜란이 일어나 서산(西山)과 사명(四溟)이 의승병을 일으켜 전장으로 나갔을 때, 그는 폐허가 된 사찰을 지키며 전쟁에 희생된 넋을 추모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남한산성의 서쪽 성곽을 보완하는 일을 담당하였고, 금강산에서 수년 동안 주석하다가 지리산으로 옮겨 신흥암(神興庵)과 연곡사(燕谷寺)를 중건하였다. 만년에는 연곡사에 머물며 교화하다가 1649년(인조 27) 시자에게 붓을 가져오게 하여 임종게를 쓰고 조용히 입적하니 세수 88세, 법랍 75년이다. 이경석(李景奭)이 명(銘)을 짓고, 조진석(趙晉錫)이 글씨와 전각을 쓴 비를 금산사에 세웠다. 부도는 보개산 심원사와 지리산 연곡사, 그리고 두륜산 대둔사에 있다. 그를 흠모한 효종은 1652년(효종 3) 혜감선사(慧鑑禪師)라는 시호를 추증하였다. 문하에 현변(懸辯), 계우(繼愚), 경열(敬悅) 등 수백 명의 제자가 있다. 저서로는 『소요당집』 1권이 있다.
· 집필자 : 신행문화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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