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부휴 선수 |
|---|---|
| 한자 | 浮休善修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임종게, 사명 유정, 벽암 각성 |
| 시대 | 조선 중기 |
| 출생 | 1543년(중종 38) |
| 입적 | 1615년(광해군 7) |
| 호 | 부휴(浮休) |
| 시호 | 홍각등계(弘覺登階) |
| 탑소재지 | 해인사 홍제암 |
| 비소재지 | 해인사 홍제암, 밀양 홍제사, 고성 건봉사 |
조선 중기 부휴계 문중을 일으킨 고승
조선 중기의 고승으로 사명 유정(四溟惟政, 1544~1610)과 함께 명성을 떨쳐 당시에 이난(二難)이라 불리었다.
남원 오수 출신으로 속성은 김씨(金氏)이다. 아버지는 적산(積山)이고, 어머니는 이씨(李氏)이다. 호는 부휴(浮休)이다. 1562년(명종 17) 20세에 신명(信明)에게 출가하였고, 부용 영관(芙蓉靈觀, 1485~1572)의 법을 이었다. 사명 유정과는 동시대 인물로 교우관계를 유지하며 ‘법 형제’처럼 서로를 존중하였다. 덕유산, 가야산, 속리산, 금강산 등 여러 사찰에서 수행정진하다가 서울로 가서 유학자 노수신(盧守愼)이 소장하고 있던 장서를 7년 동안 읽었다. 선사는 유불(儒佛)을 넘나들며 여러 책을 섭렵했으며, 글씨는 종요(鐘繇)와 왕희지(王羲之)의 필체를 익혔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선조 25) 덕유산에서 은거하고 있을 때, 시냇가 길을 따라 암자로 돌아오는 길에 왜적 10여 명을 만나게 되었다. 왜적이 칼을 휘두르며 위협하였지만, 선사는 태연하게 자세를 잃지 않았다. 이에 왜적들이 크게 놀라 예를 표하고 물러갔다.
광해군 때 어떤 승려의 무고로 제자인 벽암 각성(碧巖覺性, 1575~1660)과 함께 옥에 갇히게 되었지만, 죄가 없다는 것이 알려져 풀려나게 되었다. 광해군이 대사를 내전으로 초빙하여 설법을 청하여 듣고, 가사 한 벌과 푸른 비단장삼 한 벌, 푸른 비단바지 한 벌, 금강석 염주 등을 하사하였다. 광해군은 해인사에서 호국대재를 지낼 때, 스님을 증명법주로 추천하였다.
72세가 되던 1614년(광해군 6)에 조계산 송광사에서 지리산 칠불암(七佛庵)으로 옮겼는데, 다음 해 7월 병세가 보이자 제자 각성에게 법을 부촉하고, 11월에 다음과 같은 임종게를 남기고 입적하니, 세수 73세이고, 법랍 54년이다.
73년 동안 꿈같은 환해(幻海)에 살다가 / 오늘 아침 육신을 버리고 본원으로 돌아가네! / 확연히 공적하여 본래 아무 물건도 없거니, / 어찌 생사와 보리의 뿌리가 있겠는가!
문인들이 화장한 후 사리를 수습하여 해인사·송광사·칠불암·백장암 등 네 곳에 부도를 세우고 봉안하였다. 문하에 제자 700여 명이 있는데, 그 가운데 벽암 각성(碧巖覺性)·뇌정 응묵(雷靜應默)·대가 희옥(待價希玉)·송계 성현(松溪聖賢)·환적 인문(幻寂印文)·포허 담수(拘虛淡水)·고한 희언(孤閑熙彦) 등 7파가 가장 성하여 법맥을 드날렸다.
저술로 『부휴당집』 5권 1책이 있는데, 시(詩)·소(疏)·기(記)·서(書) 등이 수록되어 있다.
· 집필자 : 신행문화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