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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용 영관

한글부용 영관
한자芙蓉靈觀
유형인물
키워드휴정, 삼로행적
시대조선 중기
출생1485년(성종 16)
입적1571년(선조 1)
부용(芙蓉), 은암선자(隱庵禪子), 연선도인(蓮船道人)
탑소재지송광사, 해인사, 칠불암, 백장암
조선 중기의 승려로 청허 휴정과 부휴 선수의 스승
조선 중기의 승려로 벽송 지엄(碧松智儼, 1464~1534)의 제자이다. 휴정이 펴낸 『삼로행적(三老行蹟)』에는 벽송당(碧松堂), 부용당(芙蓉堂), 경성당(敬聖堂)의 행적이 실려 있는데, 부용당은 휴정에게 법을 전한 스승[傳法師]이 된다. 휴정이 1577년(선조 10)에 지은 대사의 행적에 따르면, 대사는 영남 진주 사람으로 1485년(성종 16)에 태어났다. 13세 되던 1497년(연산군 3) 집을 나와 운수인(雲水人)의 길을 떠나 곧장 덕이산(德異山)으로 들어가 고행선자(苦行禪子)를 뵙고 3년 동안 가르침을 받고 삭발하였다. 17세 되던 1501년(연산군 7) 신총(信聰) 법사를 찾아뵙고 교학을 탐구하였고, 위봉(威鳳) 대사를 참례하여 선문(禪門)에 들어갔다. 이후 구천동(九泉洞)에 들어가서 초암을 엮고 9년간 수행하였다. 1509년(중종 4)에는 멀리 용문산(龍門山)으로 들어가 조우(祖愚) 대사를 방문하고 선에 대해 토론하였으며, 그 여가에 『노자』, 『장자』를 섭렵하였다. 1514년(중종 9)에 청평산(淸平山) 학매선자(學梅禪子)에게 투신하여 현묘한 도리를 물었고, 1519년(중종 14)에 금강산 대존암(大尊庵)에 가서 조운(祖雲) 대사와 함께 두 차례 하안거를 보냈다. 이후 내원암(內院庵)에 들어가 율시 한 수를 지어 읊은 후 붓과 벼루를 불에 태운 뒤 묵언 정진하며 9년을 지냈다. 유산객(遊山客)이 찾아오면 벽에 걸린 한시만 가리킬 뿐이었다고 한다. 나무 등걸 같아야 분별하는 마음 물리치고 / 멍텅구리 같아야 시비의 마음을 막는 법 / 그래서 망상은 산 밖으로 날려 보내고 / 종일 기심(機心) 잊고서 푸른 산을 대한다오. 1530년(중종 25) 가을 고향의 늙으신 부친을 뵌 후, 곧장 지리산 벽송 지엄(碧松智儼)을 찾아뵙고 제자가 되기를 청하였다. 벽송의 인도로 20년 묵은 의심을 단번에 해소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 모신 지 3년 만에 벽송은 입적하였다. 대사는 벽송의 제자가 된 후 황룡산, 팔공산, 대승동, 의신동, 연곡동에 머물며 41년 동안 제자들을 제접하였다. 항상 조사(祖師)의 공안(公案)을 들어 보여 제자들이 힘껏 참구해서 활연대오(豁然大悟)하도록 이끌었다. 유생들은 대사에게 『중용』, 『장자』의 의문점을 묻고 의심을 해소하기도 하였다. 청허는 영남과 호남에서 유자들이 유불도 삼교에 달통하게 된 것이 부용 영관의 풍도(風度) 덕분이라 평하였다. 1571년(선조 4) 세수 87세, 법랍 72년으로 입적하였다. 제자들이 지리산 연곡사 서쪽 기슭에 부도를 세웠다. 대사의 제자인 청허 휴정(1520~1604)과 부휴 선수(1543~1615)가 이후 청허파와 부휴파로 발전하여 조선조 불교계의 양대 계파를 형성하게 된다는 점에서, 한국불교사에서 차지하는 대사의 위상이 높음을 알 수 있다.
· 집필자 : 김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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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김용태 | 서울: 신구문화사 | 2010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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