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도의 |
|---|---|
| 한자 | 道義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가지산파, 조당집, 염거, 체징 |
| 시대 | 통일신라 |
| 출생 | 미상 |
| 입적 | 미상 |
| 호 | 명적(明寂) |
| 시호 | 원적(元寂) |
| 탑소재지 | 보령 성주사 |
| 비소재지 | 보령 성주사(터) |
중국 남종선(南宗禪)을 최초로 신라에 전한 승려
신라에 처음으로 남종선(南宗禪)을 전한 고승이다. 속성은 왕(王)씨, 북한군(北漢郡: 신라 지명) 사람이다. 생애는 『조당집(祖堂集)』 「설악진전사원적선사(雪嶽陣田寺元寂禪師)」조에 전한다.
출생할 때 상서로운 태기가 있었고 이를 인연으로 출가하여 법호를 명적(明寂)이라 하였다. 784년(선덕왕 5) 사신인 한찬(韓粲), 김양공(金讓恭)을 따라 당으로 건너갔다. 이때 나이는 대략 30세 전후로 추정되며, 이후 37년간 당에 머물다가 71세 전후, 즉 821년(선덕왕 13)에 귀국하였다. 이후 설악산 진전사에서 10여 년간 교화하다가 80세 전후인 흥덕왕 4년(830) 이후에 입적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에 입국하여 바로 오대산으로 갔는데 이때 공중에서 종소리를 듣는 등 문수보살의 감응을 얻었다. 그 뒤 광부(廣府)의 보단사(寶壇寺)에서 비구계를 받았다. 후에 조계산으로 가서 육조 혜능(六祖慧能)을 모신 조사당(祖師堂)을 참례하였는데, 이때 조사당의 문빗장이 저절로 열렸고, 세 번 예배하고 밖으로 나오니 문빗장이 전과 같이 닫혔다고 한다. 다음에는 강서(江西)의 홍주(洪州) 개원사(開元寺)로 서당 지장(西堂智藏)을 찾아뵙고, 법을 물어 의혹을 풀고 법맥을 이어받았다. 이때 도의(道義)라는 법명을 얻게 되었고, 이후 두타행을 떠나 백장산(百丈山) 회해(懷海)를 찾아가서 선맥을 계승하였다.
대사는 37년 동안 당에 머물다가 821년(헌덕왕 13)에 귀국하였다. 중국의 남종선을 비로소 신라에 전할 기회를 얻은 것이다. 그는 귀국 후 선(禪)을 펴고자 하였으나 당시 교학을 숭상하던 사람들이 무위임운(無爲任運)의 종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허탄하다고 비방하며 중히 여기지 않았다. 이에 아직 선법을 펼칠 시기가 오지 않았음을 깨닫고 설악산 진전사(陳田寺)로 들어가 수도하다가 제자 염거(廉居)에게 남종선을 전하고 입적하였다.
제자인 염거는 설악산 억성사(億聖寺)에서 조사의 심인을 전하며 도의의 가르침을 폈고, 염거의 제자 체징(體澄)은 전남 장흥의 가지산에 가지산문(迦智山門)을 세워 선풍을 떨쳤다. 이때 도의를 제1세, 염거를 제2세, 체징 자신을 제3세라고 하여 도의를 가지산파의 개산조(開山祖)로 삼았다. 현재 대한불교조계종의 종헌(宗憲)에서 도의국사를 조계종의 종조(宗祖)로 받들고 있다.
· 집필자 : 김종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