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태현 |
|---|---|
| 한자 | 太賢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원측, 원효, 경흥, 유가종, 법상종 |
| 시대 | 통일신라 |
| 출생 | 미상 |
| 입적 | 미상 |
| 호 | 청구사문(靑丘沙門) |
| 주요주석처 | 광양 옥룡사 |
| 탑소재지 | 옥룡사 |
| 비소재지 | 옥룡사 |
통일신라의 승려로 유식학의 대가
통일신라 경덕왕 대의 유식학자(唯識學者)로 신라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유식학 전반에 지대한 기여를 한 고승이다. 이름은 태현(太賢), 혹은 대현(大賢)으로 쓰였다. 한국과 중국 문헌에는 대현으로, 일본 문헌에는 태현으로 기록되는 경향이 있다. 호는 청구사문(靑丘沙門)이다.
법상종(法相宗) 학자 원측(圓測, 613~696)의 제자인 도증(道證)의 제자로 알려져 있다. 도증과 직접적인 사승 관계를 보여 주는 문헌은 없다. 다만 도증이 692년 중국에서 신라로 귀국했고, 태현이 그 무렵 활동한 것, 태현이 후대에 신라 유가종의 개조로 추앙받은 것, 일본의 쇼온(照遠, 1304~?)이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태현은 도증의 제자라고 하였다.”라고 언급한 사례를 바탕으로 사제 관계로 추정하고 있다.
당(唐)의 도봉(道峯)이 「태현법사의기서(太賢法師義記序)」에서 태현의 학식과 덕망을 찬탄했고, 후대 일본의 여러 문헌에서 대사를 찬탄한 내용이 있다. 『삼국유사』에 “(태현이) 남산 용장사(茸長寺)에 주석할 때 절 안의 미륵보살이 그가 움직이는 곳을 따라 얼굴을 돌렸다. 753년 가뭄이 들었을 때 『금광명경(金光明經)』을 강설하자 비가 내렸다.”라고 한 것은 그가 학승을 넘어선 면모를 갖추었음을 보여 준다.
태현의 저술은 50부 안팎으로 추정되는데, 현존하는 저서는 『성유식론학기(成唯識論學記)』, 『기신론내의약탐기(起信論內義略探記)』(기신론고적기), 『범망경고적기(梵網經古迹記)』, 『보살계본종요(菩薩戒本宗要)』, 『약사경고적기(藥師經古迹記)』의 5부이다. 이 외에 제목이 전하는 여러 저술을 함께 살펴보면 그의 저술은 경율론(經律論)에 걸쳐 있고, 학술적으로는 유식, 화엄, 열반, 법화, 반야, 정토, 계율, 인명, 중관, 『대승기신론』 등 다양한 계통을 섭렵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태현의 학문적 성향은 포괄적이며 종합적인 성격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저술에 ‘고적기(古迹記)’라는 제목을 붙인 것이 특징이다. ‘고적’이란 이전의 학자들이 행한 연구 성과를 가리킨다. ‘기’에는 그것을 기록했을 뿐이라는 겸양의 의미가 담겨 있다. 이는 태현이 다른 학자가 밝혀 놓은 것을 충분히 수용하는 자세, 곧 공부하는 태도로 찬술에 임하여 여타 학자가 주석한 사례를 광범위하게 제시하는 방식을 보인 것이다. 실제 현존하는 저술을 보면 선행 논사들의 견해가 광범위하게 인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태현의 저술은 당시 불교논사들의 사상적 논점을 연구하는 데 매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한 저술의 양과 수준을 고려하여 대사를 원효(元曉), 경흥(憬興)과 함께 신라의 3대 저술가로 인정하고 있다.
· 집필자 : 신행문화팀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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